다락방 교재 5월 15일주간_욥기 42장 1절 6절
욥의 회개와 하나님의 공의로움를 욥기에서 이해하기 2.
욥이 회개를 한 것은 자기는 모르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이치를 따지거나, 변설을 하는 것이 무지의 소치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직접 나타나셔서 욥이 듣기만 하였던 하나님을 눈으로 본 것에 감격하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대화에서는 욥의 고난이 시작된 이유가 분명히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욥을 나무라는 내용에는 어떤 설명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너의 믿음을 시험하려 사탄과 내기를 했노라”라고 사실을 설명을 하시는 대신에 “너와 네 두 친구는 정말 나를 화나게 하였다. 너희들은 내게 욥처럼 옳게 말하지 않았다”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들의 죄를 위해 번제로 바쳐라. 그러면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다. 나는 그의 기도를 듣고, 너희들을 너희 어리석음대로 다루지 않겠다. 너희는 욥과 달리 나에 대해 옳게 말하지 않았다(쉬운 성경 욥기 42:7-8)라면서 상황을 정리하십니다. 최근 유키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김영하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못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어요. 그런 사람들은 거의 뭘 잘못하지 않아요. 인간관계를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 힘이 약해서 당하는 일이에요.” 무언가 하나님과 욥의 입장을 설명하는 인간적인 문장같이 보이지는 않습니까?
관찰과 해석에 대한 설명은 이런 정도로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은 곧 이은 질문에서 나옵니다. 다락방의 앞 질문의 답은 곧 이은 뒤의 질문에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제한된 생각과 경험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생각했다’는 설명을 하면서 ‘온 우주의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자신의 의문을 거두어들이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고 ‘내 생각과 판단을 하나님의 지혜와 공의로움보다 앞세우지’ 말라고 합니다. 욥이 42장에서 그렇게 했고, 이에 대해 하나님은 엘리바스와 두 친구의 잘못을 욥을 통하여 용서하신다고 하시면서 욥의 신원을 회복하고 잃었던 건강과 재산과 가족을 돌려주십니다. 욥의 회복의 근원은 회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키워드는 ‘회개’가 됩니다. “죄가 없는데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삐딱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열쇠말을 회개에서 하나님의 잘못을 바로잡으시는 ‘공의’로 보면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욥의 죄는 그도 인정했듯,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어떤 의도로 자기에게 고난에 시달리게 했는지 모르면서 하나님을 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뵙고 보니 그 위대함에 그저 자신의 항변이 부질없었다는 말이 되어 기존에 했던 말을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회개를 한 것입니다.
신학자 스탠리는 자기는 고난을 왜 당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는 못하지만 옳든 그르든 하나님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의 이유를 아시고, 항상 자기를 지켜보면서 자기가 옳은 답을 찾아가는지를 자신의 바로 옆에서 지켜보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스탠리는 욥기를 익히 알고 있기에 하나님에게 고난의 이유를 밝히고 그 근거를 대라고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옆에는 자기를 지키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으로 고난을 견디고 또 견뎠을 것입니다. 욥과는 다르고 저와도 다른 태도를 보인 것 같습니다.
저는 행복한 말년이 될 것이고, 아무런 정신적 육체적 고통 없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저지른 젊은 시절의 잘못이 십 수년을 돌아 돌아 저에게 고난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저의 잘못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변명하고 오히려 분노했습니다. ‘똥 낀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지요. 제가 한 행동은 저의 실수나 무지로 인한 것이었고 이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저를 용서해 주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저의 고난은 끝이 날 리가 없습니다. 결국 저는 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의 관성은 옛 기억을 왜곡하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제가 한 사과를 변질시킬 위험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하나님께 저의 잘못을 고백하고 제 잘못이 확정되어 언제든지 확인하면 변질되지 않는 순수한 회개의 마음이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고 자랑은 확대하고 예쁘게 포장합니다. 잘못은 변명하고 자랑은 떠벌립니다. 어제까지 몰랐던 잘못이 오늘 잘못으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아전인수, 내 편한 대로 생각하고 왜곡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움’은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잘못을 바로잡으시는 능력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근거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에 있음을 믿고 스스로 죄를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욥이 회개하는 것은 그저 하나님의 거대한 능력에 압도되고 위축되어 욥의 의지와 육체적 힘이 쇠잔하여 어쩔 수 없어서 하는 회개가 아님을 조금은 알겠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이 잘못을 바로잡으시는 그 능력에 의지하는 것 외에는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욥이 겪는 고난의 이유를 알지 못했듯이요.
그래도 사탄과의 내기에 욥을 건 것은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저는 딴지를 겁니다.
'성경공부,오늘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QT.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브리서4:1-13 (0) | 2022.07.06 |
---|---|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은 요나가 요구한 정의와 공평과는 다르다(송용원목사, 매일성경,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이라면’) (0) | 2022.06.29 |
욥의 회개와 하나님의 공의로움를 욥기에서 이해하기 1. (0) | 2022.05.23 |
QT 사무엘상 8:1-22 왕을 세워 주시오! (0) | 2022.05.16 |
오늘의 QT : ‘묵상은 혁명이다’ 김영봉 목사님 글을 다시 쓰기(글쓰기 연습) (0) | 2022.04.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