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브리서4:1-13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브리서 4: 7-10)
하나님이 주신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있어도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듣는 자가 자기의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아서 그렇다면서 위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와 같이 가나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구원(안식)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안식의 약속과 자기의 믿음을 결부시키라는 부연 설명 같습니다.
매일성경의 해설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겐 아직 구원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안식에 완전히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의 후손이라 하더라도 완전한 안식에 다다른 것이 아님을 설명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영원한 안식이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수백 년 후에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따르라’는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완전한 모형이었을 뿐, 안식의 완성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우리 종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주셨고, 믿음을 가지면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는 성화의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화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라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복음과 결부시켜야 한다'는 말은 복음을 자기 믿음화 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믿지 않으면 안식을 받을 수 없다는 동의반복의 말일 뿐입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남은 구원의 여정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안식(복음) 약속과 나의 믿음의 결부’만 하면 된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구원의 여정이 남아 어떤 ‘믿음의 행위’를 해야 한다는 말일까요? 믿음이 체화되면 당연히(혹은 노력으로) 성화가 된다는 말이나, 믿음을 갖지 못하면 당연히 성화는 물 건너 간다는 말이나 믿음의 견고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언뜻 말이 되는 듯도 하지만, 믿음은 믿으면 믿는 것이고 안 믿으면 안 믿는 것이지 믿음의 증거로 어떤 것을 요구한다면 결국 그것은 ‘성화’가 아닐까요? ‘믿습니다!”는 구호가 아니라 ‘믿음의 행위’가 그 증거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시 성화는 구원의 조건이냐 아니냐는 질문이 또 나옵니다. ‘전 믿습니다’라는 고백에도 안식을 못 얻었다면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과 결과적으로 결부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는 판결문이 나왔을 때만 알 수 있을까요?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복음을 오늘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은 무엇일까요? 그 구원의 여정이란 무엇일까요? 오늘의 QT는 질문으로 끝났습니다(북유럽의 프로테스탄트는 성실과 엄격한 교리의 이행으로 믿음을 알았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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