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든 그림책 해설 :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창비
그림 속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입니다. 정치적 의견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지만, 그의 책 '미학 오디세이'는 서양미술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을 성실하고도 친절하게 해 주는 책입니다. 우리 집에도 아내가 젊은 시절 사놓은 도판 그림책이 제법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들인데, 그 시절 제법 많은 돈을 들여 산 책이라고 짐작합니다. 해외여행 이라고는 일본 후쿠오카나 유후인, 태국 파타야나 한두 번 가본 것이 다인지라, 누가 해외여행을 가서 루브르를 방문했다고 하면 기가 죽기도 했던 시절이 제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꺼내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들을 도판으로 봤지만 그건 그냥 그림이었고, 작가와 작품 속 주인공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주제가 무엇이고, 소재는 무엇이며, 주인공들이 어디에 나오는 인물들인지를 상식으로 알고 “아, 이런 그림이 있구나.”라고 외웠지요.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외우는 것은 다 소용없고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진중권 씨의 설명은 남달랐습니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이야기를 걸고,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정선의 그림 속 산모퉁이를 정지한 채 걷고 있는 나그네를 찾아내고, 그가 무슨 말을 그 멀리서 제게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듯이 진중권 씨의 설명은 주인공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솰라솰라 외국어를 유창한 통역으로 듣게 했습니다. 제가 미술에 관한 책을 보면 선뜻 읽게 되는 이유입니다. 진중권과 유홍준 두 분에게 항상 감사하게 됩니다.
오늘은 ‘양정무 교수의 미술 에세이, 벌거벗은 미술관’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고전 미술의 신화를 말해주고(고것들이 최고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강탈의 역사, 팬데믹과 미술의 대응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미술이라는 것이 완벽하여 흠이 없는 아름다움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실수투성이 인간인 작가들이 인간의 한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도전했기 때문에 그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인간성을 또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술가들은 완벽함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상적 번민을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위대하다는 게지요. 고상하고 뻔지르르한 작품으로 자신의 완벽함을 주장하는 작품과 작가들을 가끔 봅니다. 본인이 직접 그러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완벽함을 포장하는 사람들이지요. 이건 가짜입니다. 양정무 교수의 책을 보면서 가짜를 구별하지는 못하더라도 과거의 작품들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읽어내는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 지를 조금 배운 듯합니다.
과거의 작품은 “역사적 실체로 현재만큼이나 존재의 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를 현재의 관점으로만 재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는 저자의 설명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는 역사학자 카의 설명이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은 아니라는 것을 두리뭉실하게 이해하고 갑니다. 현실 응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는 과거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재의 상황과 비교하고, 바라는 미래의 꿈에 맞춘다는 역시 하나마나한 결론을 냅니다. 왜냐고요? 사람마다 과거에 대한 이해는 다를 수 있고, 현실의 상황 또한 그렇고, 미래의 꿈은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가 읽은 책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예술품들이 품은 이야기가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이고, 그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제가 여러분들에게 전하면, 여러분들은 “어, 아닌데, 전 다른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고 대답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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