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따라 걷는 생각 1
선운사에서 최영미 시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꽃이 어디 선운사에서만 피고 지겠습니까. 마음 허전하면 찾아갈 곳이 어디 선운사만 있겠습니까. 하필이면 꽃이 지는 계절,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사람을 얻을 때,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 잊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씨앗에 숨긴 꽃을 피우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싹이 나면서 들이차는 빗물에 쓸리면서도 약한 뿌리로 버티던 세월 동안의 추억이 알알이 새겨져 있는 꽃인데, 떨어지는 모습 볼 틈도 주지 않고, 님 한번 생각할 틈도 없이 아주 잠깐 일어나는 일처럼 꽃이 맥없이 떨어집니다.
내가 알던 꽃같이 예쁜 사람도 이제 끝, 하면서 순간이동으로 사라지면 좋을 건만, 나를 떠나 아직도 저 먼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 산 구비를 넘어가고 있어 내 눈에 밟힙니다. 정선의 그림도 아닌 것이 구비구비 산길 모퉁이를 정지한 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지 말 일도 아닙니다. 애초 만나지 않았다면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 떼를 쓸 수도 있지만 헤어지는 마음을 모른 채 어찌 살아있다고 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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