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시 따라 걷는 생각1

무주이장 2021. 12. 22. 13:39

시 따라 걷는 생각 1

 

선운사에서                                               최영미 시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꽃이 어디 선운사에서만 피고 지겠습니까. 마음 허전하면 찾아갈 곳이 어디 선운사만 있겠습니까. 하필이면 꽃이 지는 계절,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사람을 얻을 때,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닌 잊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씨앗에 숨긴 꽃을 피우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싹이 나면서 들이차는 빗물에 쓸리면서도 약한 뿌리로 버티던 세월 동안의 추억이 알알이 새겨져 있는 꽃인데, 떨어지는 모습 볼 틈도 주지 않고, 님 한번 생각할 틈도 없이 아주 잠깐 일어나는 일처럼 꽃이 맥없이 떨어집니다.

 

내가 알던 꽃같이 예쁜 사람도 이제 끝, 하면서 순간이동으로 사라지면 좋을 건만, 나를 떠나 아직도 저 먼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저 산 구비를 넘어가고 있어 내 눈에 밟힙니다. 정선의 그림도 아닌 것이 구비구비 산길 모퉁이를 정지한 채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지 말 일도 아닙니다. 애초 만나지 않았다면 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 떼를 쓸 수도 있지만 헤어지는 마음을 모른 채 어찌 살아있다고 하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예스24 서고에 있습니다. 여기 첫 시가 선운사에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