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장편소설, 문학동네.
제주 4.3 사건을 알게 된 것, 그리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2003년의 일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여전히 4.3 사건의 발단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시 득세했다. 다시 나라의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하여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것이 2018년 4월 3일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사과가 2003년이었고 2018년에야 다시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참석하였으니 이 이야기는 15년의 세월이 촛불처럼 타고 나서야 이뤄진 것이다.
작가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2014년 6월에 이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썼다. 2018년 세밑에야 그다음을 이어 쓰기 시작했으니, 이 소설과 내 삶이 묶여 있던 시간을 칠 년이라고 해야 할지 삼 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책 출간에 맞춰 2021년 가을 초입에 썼다. 작가라도 우리 역사의 굴레에서 같이 숨 쉬는 것은 다름없는 사람임을 인식했다.
4.3 사건의 시작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주장이 공식 사과한 대통령, 추념식에 참석한 대통령과 다르다 해도 변함이 없는 것은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중산간 지대는 초토화의 참상을 겪었다. 11월 중순께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진압군은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 중산간 지대에서 뿐만 아니라 해안마을에 소개한 주민들까지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희생되었다. 그 결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입산하는 피난민이 더욱 늘었고, 추운 겨울을 한라산 속에서 숨어 다니다 잡히면 사살되거나 형무소 등지로 보내졌다. 4개월 동안 진행된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방화되었고, 마을 자체가 없어져버린 이른바 ‘잃어버린 마을’이 수십 개에 이르게 된다'(다음 백과사전에서 인용)
는 사실이다. 소설에서도 제주도민 3만 명이 죽었고, 그렇게 살해된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다. 이후 전쟁이 터지고 제주 건너 이 땅에서는 20만 명이 살해되었다고 기록한다. 이야기는 4.3 사건의 아픔을 가진 채 살아야 했던 인선의 어머님과 그 어머니의 아픔을 간병하며 알아갔던 인선이를 경하의 시선으로 줄곧 따라간다.
4.3 사건을 얘기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 권력에 의해 부당하게 가해진 생명과 재산의 침해에 대하여 누구도 시대 상황을 이야기하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하기에는 사람의 가치는 너무나 크다. 정치를 사람보다 앞서 얘기하는 자들이 있긴 있다. 지금도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끈질기게 지켜보며 경계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권력의 언저리에라도, 아니 그 권력 언저리의 근처 어디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기능적인 엘리트를 경계하고 솎아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공격당하는 꼴을 더 이상 보지 않으면 좋겠다. 소외당하고, 외면당하고, 핍박받고, 피해 사실 조차 알리지 못하게 강압한 세월을 산 사람들을 이 시대의 작가가 어찌 외면할 수 있었으랴. 그런 면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은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였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고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을 늘 사랑하는 작가로서 나는 한강 씨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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