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흐르는 곳에(If it bleeds), 스티븐 킹,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영화를 보다가 원작 소설을 찾아 읽은 것이 스티븐 킹이 시작이었습니다. 인터넷 덕으로 쉽게 그의 신간을 찾아내서 읽곤 합니다. ‘피가 흐르는 곳에’라는 제목의 소설은 ‘피가 흐르는 곳에 특종이 있다’는 업계의 격언에서 힌트를 얻어 쓴 글이라고 작가는 소개합니다.
오늘도 우리 언론은 비행기 추락사고, 총기 난사 사고, 테러 공격, 유명인사의 죽음과도 같은 끔찍한 비극의 현장에 출현합니다. 특종을 한다고 사건 사고를 파헤치고, 때로는 엉터리로 조합되어 보다 극적인 소식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보도하지요. 그러고 보니 피가 흘러야 특종이 나온다는 격언은 사실로 보입니다.
소설에서는 끔찍한 사건과 사고 현장을 보도하던 기자가 스스로 사건을 만들어 보도하는 것을 줄거리로 합니다. 피가 흐르는 곳을 찾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피를 뿜는 사건을 만들고는 보도를 한다는 것이지요. 작가의 상상은 여기서 마귀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의 사건 사고 보도 기자들은 불행한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특종을 위해서는 비참한 사건, 사고 현장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어른들이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경찰이나, 헌병 출신의 사람들을 좋게 평하지는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늘 사람을 의심하면서 살아야 하는 직업이기에 그들의 심성이 좋지 않다는 편견을 가졌다고 했지요. 그래서 경찰이나 헌병으로 퇴직한 사람들을 고용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어제 중앙일보 뉴스는 OECD 보고서를 인용해 우리나라가 2030년부터 2060년까지의 1인당 잠재 성장률이 OECD 국가들 중 꼴찌라는 기사를 보도했다고 합니다. OECD는 2000년부터 2060년까지 60년의 기간 동안을 예상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하는데 중앙은 앞 부분의 30년은 빼고는 2030년부터 2060년까지의 30년을 거론하며 꼴찌 보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1인당 국민소득이 이탈리아를 제치고, 2019년 일본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2021년에는 자원부국 캐나다보다 많고요, 2022년 내년에는 영국을 능가한다고 합니다. 이 모든 자료가 똑같은 OECD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보고서의 앞부분은 무시하고, 높은 성장률로 G4까지 성장했는데, 이후 1인당 잠재 성장률이 꼴찌라고 목청을 높이는데, 이 기사를 쓴 기자나 이를 보도하게 한 데스크나, 이를 그대로 인용한 타 신문이나 대문에 퍼떡 올린 포털은 모두 우리나라 경제가 ‘피가 흐르는 곳’이 되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1인당 잠재 성장률이 꼴찌면 어떤 꼴이 전개될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국뽕이 싫고(실상은 정권이 싫어서 그렇겠죠) 보고서의 일부를 악의적으로 인용해 보도하는 것은 소설 속의 특종기자와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요? 저는 그렇게 느껴집니다.
정치는 권력을 둘러싸고 벌이는 전쟁과도 같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이들의 싸움에서 우리는 피 튀기는 전장을 보는 것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보며 소망을 품는 정견을 보고 싶어 합니다. 후보자들도 그런 정책을 발표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론이 내는 보도는 ‘피가 흐르는 세상’에 어울리는 기사여야 한다고 일관된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로를 이간질하며, 편을 가르고, 비난을 비판이라고 우기며 글재주를 활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들이야 이런 정치인들에게 속고, 편가름에 익숙하지만 최근 2030 세대들은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자들이라고도 하고, 게임에 익숙한 세대들이라 편가름이 없다고 합니다. 훌륭한 축구 선수가 이적을 하면 좋아하는 팀도 바꾼다는 세대라고 설명을 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피가 흐르는 곳’에 늘 있는 악마 기자가 설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우리 늙은 세대가 아니라 2030 세대가 적임일 것 같습니다. 그런 후배들이 늘 부럽습니다. 그런 후배들 중 나의 딸들도 있음이 자랑스럽습니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는 글에서 이어진 생각이 어색해서 이야기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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