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선진국, 한국 사회의 고장난 인센티브 시스템, 박태웅, 한빛비즈
박태웅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의 책입니다. 이미 뉴스공장이나 유튜브에서 그의 주장을 들었던 적이 있었던 내용이지만 책을 통해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어 1부, 선진국의 조건. 2부, 고장난 한국 사회. 그리고 3부 AI의 시대로 분류했습니다. 3부의 이야기는 사실 무슨 이야기인지 알 듯 모를 듯하여 읽고 난 후 설명을 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1부와 2부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문제를 도출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들이었습니다. 그중 한국사회의 고장난 인센티브 시스템이라는 부제가 달린 글이 유독 마음에 닿았습니다. 요약을 해보지요.
한 사회의 골격은 그 사회의 상벌체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주장입니다. 정치의 우선순위가 얼마나 왕에게 아부를 잘하느냐에 달려 있으면 왕의 주위에 남는 것은 무능하고 제 이익을 지독히 챙기며, 그만큼이나 처신에 능하고 권모술수에 밝은 자들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체계는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굳어지면서 기득권층이 형성됩니다. 이들은 법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권을 보호합니다. 장발장이 빵을 훔치면 3년형을 받아 감방으로 가지만, 회사의 사장이 300억 원이상을 횡령해도 집행유예로 감방행을 면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기득권층을 이루는 ‘우리끼리’는 봐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여기서 법원이 설명하는 집행유예의 이유는 ‘사회에 공헌한 점’을 감안했다는 추상적인 표현이면 족합니다. 더 설명을 요구해봐야 메아리가 없습니다.
열심히 장사를 해서 점포가 잘 되면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려 임차인의 노력의 많은 부분을 가져갈 수 있게 만든 것도 부동산을 가진 ‘우리’를 두둔한 이유 때문입니다. 박 의장은 일본의 경우를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노포가 없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합니다. 전 우리의 시스템이 이렇게 잘못된 세상을 살면서 조금씩 개선이 될 것임을 믿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정부가 들어섰을 때 기대했고, 김대중 대통령 정부 때도 희망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가장 철저하게 우리 사회 체계를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너무도 사랑했던 노무현 대통령 정부였습니다. 기대가 적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능멸하며 조직적으로 훼방을 놓는 패악질을 보면서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체계가 어떤 정부가 들어서야 바로잡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아예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 생물학적인 소멸도 이루어지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문재인 대통령 정부의 정책을 칭찬하는 기사를 보기가 어렵습니다. 유엔경제총회(UNCTAD)에서 195개 회원국 전원이 동의하여 선진국 지위를 얻었다는 뉴스가 이명박이나 박근혜 정권이었다면 난리 날 정도로 시끄러웠겠지만 그렇지 않았고, 요소수가 부족하다며 문 정권이 전략물자의 관리를 못했다는 뉴스는 시끄러울 정도로 기사가 많습니다. 언제부터 요소수가 전략물자가 되었는지는 설명 못하면서 말입니다(사실 요소수는 10여 년 전부터 중국이 생산하면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국내 생산을 중단했던 것으로 중국이 전 세계의 90%를 공급하고 있는 물자일 뿐임에도 말입니다) 시중의 요소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자 이번에는 비행기 기름값이 요소수 가격보다 더 든다며 요소수 공급을 위한 방법을 비난합니다(당연히 요소수가 기름값보다는 엄청 싸겠죠. 이걸 누가 모릅니까?) 언제부터 신문쟁이들이나 방송쟁이들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었는지 전 그 시기를 과문해서 모릅니다만 그들은 자칭 ‘우리끼리’의 클럽 회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어제 관훈클럽 토론을 모두 보았습니다. 질문자들의 질문 수준과 답변자의 수준 차이가 저 같은 늙은이에게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는 답변자가 ‘우리끼리 클럽’의 회원은 아닌 사람임은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서는 몽상가를 보았지만, 어제 답변자의 모습에서는 냉정한 실천가를 보았습니다. 현실의 발판에서 꾸는 그의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골격을 새로이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일을 할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가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그 비난의 근거가 ‘우리끼리’ 이야기인지 아닌지 유심히 보며 지지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사회를 보며 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는 박태웅 의장의 글이 소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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