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이유’, 추리소설의 서스펜션이 이럴 수도 있구나!
1990년도 부동산 버블이 발생한 일본에서는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타워팰리스에 살고 싶은 우리네 욕망도 일본보다는 10년 정도 뒤에 불이 붙었을 테니,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의 작가는 한국의 여느 작가라고 해도 믿길 정도다. 일본과 한국이 이토록 앞서기니 뒤서거니 하며 닮았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다. 그런데 꼭 이렇게 서로 척지고 살아야 할까? 국가 권력이 너무 나대면 왜곡되고 경직된다. 그러면 발전이 더디다. 일본의 보수정권이 언제쯤 현실감을 되찾을 수 있을까?
1996년 반다루 센주기타 뉴시티 2025호 고급 아파트에서 4명의 일가족이 살인을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범인을 누가 잡아낼까? 미야베 미유키는 어떤 형사를 등장시킬까? 그의 이름은? 그러나 아무도 없다. 그냥 이야기를 끌어가는 사람은 르포 형식을 띄고 인터뷰를 통하여 사건을 설명한다.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시들해질 무렵, 어 이상하다. 이거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닐까?
사건의 개요다.
고급 아파트를 장만하기를 원하는 부인의 등쌀에 능력에 버거운 아파트를 빚을 내서 산 가족이 빚을 못 이겨, 경매를 당하는 위기에 처한다. 위기에 처한 이들 가족에게 도움을 빙자하여 부동산업자가 달려들어 경매 전 임차인이 있는 것으로 꾸미고, 낙찰인에게 집의 인도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집주인과 ‘버티기꾼’인 거짓 임차인 그리고 부동산 업자가 이익을 얻는 방법을 실행한다. 집을 경매받았던 사람은 여차 저차 하여 법적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고, 이 와중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이들이 이 사건에 어떤 이유로 관여되어 사단이 났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한다. 추리소설에서 보통 나오는 급박한 상황은 전혀 없다. 그냥 무심히 설명하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사건의 배경이 된 시대 상황과 현재 삶의 원인이자 이유인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개개인이 사건의 바퀴에 깔려 버린 답답함이 고구마를 먹고도 물을 먹지 못하는 ‘체함’ 같은 숨쉬기 어려운 느낌 속에서 책을 읽는 동안 헤맸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이번이 첫 경험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 ‘화차’는 책이 아니라, 우리나라 영화로 보았다. 과도한 채무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 사는 주인공의 얘기였지만 공감은 그렇게 많이 가지 않았다. 빚을 지고 더 이상 본인의 삶을 감당하지 못하여, 타인의 삶을 훔쳐 사는 것도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었다고 하였다. ‘이유’를 읽으면서 그가 일본 사회에 대하여 정밀한 분석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요란하지 않아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하는 면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는 시선의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클 것으로 확신한다. 그의 작품 ‘모방범’을 찾아 읽어야 한다는 마음을 굳혔다.
1990년대, 일본의 위태로움은 오늘 2022년부터 발생할 한국의 위태로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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