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읽기 :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낼 섬세한 지원 계획(725호 2021.8.10)
북한이 남북통신선을 복원하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소식을 전하는 남문희 기자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 미국과 중국과의 갈등, 우리나라와 미국의 조율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최근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기사였다. 정리해본다.
1. 미국과 중국의 최근 회담의 핵심 과제인 한반도 핵문제
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중국을 방문해서 온갖 수모를 겪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최고위 인사의 방중이었지만 의전부터 급이 안 맞았다. 미국 측이 파트너로 원했던 인물은 중국 외교부 서열 2위인 러위청 수석 부부장이었지만 중국은 보다 급이 한참 낮은 서열 5위 셰펑 부부장을 파트너로 내세웠다. 또 한편 중국 측이 회담 장소로 잡아놓은 곳은 베이징이 아니라 텐진이었다. 지난 3월 18일 미.중 고위급 회담 당시 미국 측이 알래스카를 회담 장소로 잡았던 데에 대한 되갚음이었다. 조선시대 중국에 사신을 보낼 때 고위급 사신은 베이징으로 가고 급이 낮은 사신은 텐진에 머물게 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미국 국무부 2인자가 졸지에 급 낮은 사신 취급을 당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가 7월 26일 저녁 기자들에게 배포한 회담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셔먼 부장관의 발언은 없고 셰펑 부부장의 일방적인 훈계조 발언만 공개됐다.
셰펑 부부장은 기자들을 만나 “미국이 기후변화와 이란 핵문제, 한반도 핵문제 등에서 중국의 협력과 지지를 요청했다. 미국은 중국에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만 협조를 요청하고 자신들이 우세한 분야에선 디커플링(탈동조화)과 공급 중단, 봉쇄, 제재, 충돌도 불사한다”라고 말했다. “못된 짓만 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하는데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자료에는 “홍콩과 신장지역, 억류된 미국인과 캐나다인 문제, 기후위기 등과 더불어 이란.아프간.미얀마 등 여러 역내 사안과 함께 북한 문제도 다뤘다”라고 되어 있다. 셰펑 부부장의 발언에서 “미국이 기후변화와 이란 핵문제, 한반도 핵문제에서 중국의 협력과 지지를 요청했다”는 대목은 중요한다. 미국 측이 양국이 논의했다고 나열한 여러 문제 중에서 중국은 세 가지를 콕 짚은 것이다.
기후변화나 이란 핵문제, 한반도 핵문제 등 세 가지 문제도 최우선 순위를 기준으로 다시 압축할 수 있다. 기후변화야 중국도 이론이 없을 터이고 이란 핵문제는 중국보다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한반도 핵문제만은 중국의 협력이 대체 불가능하다. 셔먼 부장관이 이 시기에 중국을 꼭 찾아야 했던 이유를 굳이 한 가지만 들라면 ‘한반도 핵문제’가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셰펑 부부장이 ‘중국에 원하는 게 있을 때만 협조를 요청한다’며 큰소리친 배경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중국은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악마화한 트럼프 정부의 대중 접근법을 물려받았다’(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자칭궈 베이징 대학교수가 지난 7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니어재단 주최 4국 전문가 세미나에서 한 말)고 생각한다. 한반도 핵문제에서 중국의 협력을 원한다면 트럼프 정부시절에 취한 ‘중국 악마화 조처’를 먼저 해제한 것을 요구한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 대하여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키를 쥐고 있는 게 북한뿐이다. 북한이 세게 무력도발을 해 미국을 당황하게 만들면 중국이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중국의 자신감을 이용해 미국의 중국 압박을 풀려고 한다는 말이 되겠다.
2. 북한의 상황 분석
북한은 4월 중순 이전까지 만해도 1월의 당대회 기조를 유지했다. 1월 당대회를 전후한 북한 분위기는 한마디로 ‘자력갱생, 중국 의존, 한국 무시, 미국 봉쇄’로 요약된다. 즉 바이든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 주역들이고 지난해 미국 대선 기간의 대북 발언을 놓고 볼 때 기대할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여차하면 바이든 정부 4년은 없는 셈 치고 가기 위해 내부 단속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중국에 의탁한다는 것은 중국의 용역을 수행하고 그 대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4월 15일 태양절은 한반도가 새로운 신냉전의 파고 속으로 휘말려 들어갈지 말지를 판가름하는 분기점이었다. 태양절을 전후해 북한이 3000톤급 잠수함 진수 및 SLBM을 발사하고 중국이 그 대가로 식량과 생필품. 의약품을 실은 단둥발 평양행 특급열차를 보내는 맞교환이 일어나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열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북한에 대한 식량공급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중국이 무릎을 꿇었다.
남북의 친서 교환이 최근까지 10여 차례 있었다고 한다. 북한으로서는 그래도 중국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제일 좋기로는 중국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체제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이 중국의 대북 지원을 막고 나섰고, 중국은 또 북한이 먼저 미사일을 쏘면 지원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의 확실한 지원 약속 없이 미사일을 쐈다가는 북한만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시 주석의 지원 약속을 친서 형태로 공개하도록 하기도 했으나 그조차도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최근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5월 말 중국이 다시 식량 10만 톤을 지원하겠다고 해놓고는 6월 한 달간 감감무소식이었다. 7월 들어 선박 편으로 찔끔찔끔 들어오는데 겨우 수만 톤에 그쳤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의 지방은 식량 부족으로 아우성이다. 8월 이후에는 어려움이 본격화할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의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데 중국은 북한을 이용해 미국으로부터 챙길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더 이상 중국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가? 북한에게 미사일을 쏘라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들이 미국에게 얻어 낼 것이 있고, 북한에게는 중국의 용역 수행 대가로 식량지원을 하겠다는 말이 되겠다. 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할까?
3. 우리 정부의 전략은?
지금의 현실은 그렇다. 청와대의 발표문대로 ‘남북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다시 진전’시켜 나가자는 것인데 문제는 북한이 생각하는 ‘신뢰 회복과 관계의 진전’이 남쪽이 생각하는 그것과 같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8월부터 10월 사이 식량 20만 톤을 마련해야 하는 김정은 총비서에게 신뢰 회복과 관계의 진전은 모두 이 문제로 귀결할 것이다. 2018년처럼 북한의 갑작스러운 변침에 놀란 중국이 당장 식량지원을 늘리겠다고 하면 또다시 돌아설 수도 있다.
지금 우리에게 또다시 중요한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북한을 중국과의 유착에서 떼어내 2018년 같은 남.북.미의 틀에 다시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현 가능한 전략이 필요하다.
일단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중국이 버티고 있고 북한이 자존심 때문에 남한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지원 주체와 관련해 한국 정부 단독이 아닌 한.미가 주체가 되는 국제공조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경기를 일으키는 식량지원이나 인도적 지원이라는 말을 피하고 중국이 주로 하는 방식인 농업 협력을 앞세워 식량 20만 톤에 비료 10만 톤, 그리고 농업용 비닐하우스 등의 농자재 지원을 묶어서 하되 북측으로부터도 상응하는 대가를 받음으로써 서로의 체면과 명분을 세우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체면도 지키고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제시해야 할 것이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2018년의 경험을 거울 삼아 북쪽에서 다시 찾아올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시사in 남문희 기자)
늘 한반도를 보는 시각을 우리 중심으로 교정하여 주는 남문희 기자입니다. 한반도 현인이라고 불리는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과 함께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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