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성경(유진 피터슨) : 로마서 이해하기(1장~3장)
1장
사도란?
사명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 몸 바쳐 일하는 그분의 종이자, 하나님의 말씀과 하신 일을 선포할 권한을 부여받은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어디서 드러납니까?
사람들을 바로 세워 주시는 하나님의 길은 믿음의 행위 안에서 드러납니다.
2장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자신의 죄(자신의 욕망대로 살고 싶어 하는 것=하나님에 대한 불신)와 잘못이 발각되는 것을 모면해 보려는 흔한 술책입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기에 누군가를 비난할 때마다, 여러분은 자신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선민의식에 빠진 민족이며 그들 속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럼 유대인들은 자동으로 인정받은 민족일까요?
유대인이라고 해서 하나님께 자동으로 인정받는 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법을 듣기만 하고 그 명령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할례는 꼭 필요할까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살지 않는다면, 차라리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례 받지 않고도 하나님의 길을 따라 사는 이들은 할례 받은 이들 못지않습니다. 사실 더 낫습니다. 여러분을 유대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여러분 마음에 새겨진(마음에 새겨지고 믿음이 행해지는 것) 하나님의 표시이지, 여러분 피부에 새겨진 칼자국이 아닙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지, 율법 전문가들한테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3장
우리의 악한 행위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운 행위를 분명히 드러내고 확증한다면, 그 일로 우리는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 유다가 밀고를 해서 시작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합니다. 위 질문과 비슷한 논리구조로 하나님의 계획을 실천한 유다의 ‘예수님 밀고 사건’으로 유다를 비난할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만, 만약 유다가 이를 거부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하나님의 뜻이지 유다의 밀고가 필요하고도 충분한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종 중 누군가가 나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밀고하는 사건이 있을지언정 그것이 꼭 유다로 결정되었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유다가 밀고를 할 것을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아셨고요. 그러나 유다의 결정은 하나님의 지시는 아니었습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증거가 성경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이건 제 생각입니다)
위의 질문은 잘못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르지 않은 일을 하신다면, 어떻게 그분께서 세상을 바로 세우실 수 있겠습니까?
성경 말씀으로 다른 이를 깨우치게 하고 싶은데 잘못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다른 사람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만, 모든 사람의 죄에 우리 역시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될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십자가 사건)이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는 다 죄인으로 오랫동안 비참한 전과를 쌓아 왔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그 영광스러운 삶을 살아 낼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도 입증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일해 주셨습니다. 순전히 은혜로, 그분은 우리를 그분 앞에 바로 세워 주셨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그분의 선물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진창에서 건져 주셨고, 우리가 있기를 늘 원하셨던 자리로 우리를 되돌려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은 현재 진행 중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에 순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가 행하는 일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우리가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또 다른 모든 사람들과 발맞추어 나가려면, 우리가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가야지, 거만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우리가 행진을 이끌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초점을 우리가 행하는 일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로 옮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신중히 따르던 삶을 취소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삶 자체를 제자리에 놓음으로써, 그 삶을 더 굳게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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