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잠언 24:23-34, 선으로 악을 이겨라.
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언 24:29)
어제 로마서 12장의 말씀을 통하여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셨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의 묵상 중 같은 말씀이 잠언에도 있어서 최근 경험담을 곁들여 묵상을 합니다.
사람들은 호구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못하는 욕도 어떤 경우에는 하고, 만약 네가 덤비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뜻을 온 몸으로 표현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갑질을 하는 입주자의 패악질을 속으로 삭이며 버티는 것도 삶의 방편을 잃어버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고, 갑질 피해자나 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나 회유 협박에 그만 생명의 끈을 스스로 자르는 행위는 그런 노력이 실패했다는 인식의 결과이거나, 내가 죽음으로 너를 심판의 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모두 나는 호구가 아니다는 결기가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응이 안타깝고 절망적이라서 오늘의 말씀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최근에 경험한 일입니다. 회사가 공장을 신축하는데, 이웃 주민이 계속 민원을 넣어 공사를 방해했습니다. 감정이 많이 상했고 공장 준공이 2년이나 늦었습니다. 공장 진입도로를 개설하는데 이웃 주민의 토지를 사용하는 조건이 너무 과했습니다. 주민이 요구하는 것을 주기보다는 차라리 매입이 나을 것으로 생각하고 주민의 땅을 매매계약 했는데, 계약금을 지급하려고 하니 수령을 거부했습니다. 매매계약 후 바로 시작했던 도로공사도 중지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공장은 임시사용 승인이라는 방법으로 공장을 가동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공장의 소유권 행사에 제약을 받아 대출금 연장을 위한 담보를 제공하지 못하여 비용도 추가 발생했습니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던 중에 계약 후 중지되었던 도로 공사의 공법을 변경하여 도로를 완공하였고 임시사용승인기간 만료 전에 간신히 준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일이 끝난 듯했는데, 젊은 사장이 분을 삭이지 못해 주민을 상대로 매매계약불이행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액이 9천만 원인 소송이었습니다. 젊은 사장이 소개받은 젊은 변호사도 승소를 확답했기에 일어난 사단이었습니다.
소송을 당한 주민은 중재를 통하여 기존 계약을 이행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측은 승소를 확신하여 중재안을 거부했습니다. 계약을 이행하지 않은 것은 주민의 욕심 때문이었기에 주민의 중재요청은 당초 예상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회사를 그렇게도 괴롭히더니 우리가 그를 괴롭히니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동안 꼬였던 속도 풀리고, 기분도 좋았습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던 변호사의 예측과는 달리 소송의 결과는 회사가 전부패소로 결정이 났습니다. 여러 변호사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다음과 같은 추정이었습니다.
‘회사가 토지매입을 한 후 상대방이 계약금 수령을 거절하였다고 하여도 이후 계약을 이행하겠다는 조정안을 제시했을 때, 계약을 하지 않고 손해배상만 주장한 것에 대하여 미운 털이 박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이웃에게 당한 분함과 억울함, 그리고 복수심에 의하여 법적 권리주장을 하였지만 회사라는 강자가 이웃의 원주민을 괴롭힌다는 심정을 재판부가 가졌다는 말입니다. 판결문에는 법리적용의 무리함이 그대로 표현되었지만 제도상 그 판결을 뒤집는 행위는 또 다른 재판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항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뜻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였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웃 주민이 우리에게 행했던 과도하고 무리한 요구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 일을 방해했다고 하여서 우리도 그가 행한 대로 이웃에게 갚으려던 시도는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요? 애초 주민이 요구했던 것들은 하나도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대응한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비용이 더 소모되었지만 그 손해까지 이웃에게 물리겠다는 주장은 과했습니다.
이웃과 우리의 문제를 제3자인 판사에게 결정권을 넘기면서 우리는 다시 시간과 비용을 허비합니다. 이제 항소심에서 꼬인 판결문의 법리적용을 바로잡는다고 하여도 이웃에게 우리 의도대로 책임을 묻는 것이 어렵습니다. 애초 법원에 가기 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는 최선의 결과입니다. 물론 이웃도 재판에 든 비용과 시간이 물거품이 되고 역시 아무런 소득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눈엔 눈으로 이엔 이로 갚으리라고 시작한 우리 회사의 계획은 하나님의 뜻으로 어그러졌습니다.
최근 갑질 당했던 경비원과 성범죄의 피해자였던 여군이 억울하여 목숨을 끊고서야 마치 올바른 심판이 있는 듯 보도가 되지만 이들이 살아서도 심판의 엄중함이 살아있는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가해자가 언뜻 보면 경비원과 이중사가 볼 때 벽과 같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 것도 아닌 사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 오늘 살펴본 말씀을 믿던 안 믿던 세상을 사는 지혜라고 생각하고 묵상하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의 삶이나 시간, 금전을 소모하면서 악을 이기시려고 하지 맙시다. 우리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국가기관이나 이웃이 많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만으로 살 수 없다는 분들도 많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 만든 상벌 시스템이 엄연합니다. 기독교 역사는 우리 인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할 제도와 기관, 그리고 철학이 살아 숨쉰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것이 아닙니까. 정치의 회복이 성경과 잇닿아 있습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21)는 말씀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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