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오늘묵상

오늘의 묵상 : 르무엘 왕의 잠언(잠언 31:1-9)

무주이장 2021. 6. 29. 12:06

오늘의 묵상 : 르무엘 왕의 잠언(잠언 31:1-9)

 

 오늘 새벽기도회의 제목은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매일성경의 제목은 르무엘 왕의 잠언입니다. 제가 제목을 뽑으려면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렵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 르무엘 왕을 훈계한 잠언입니다. 르무엘 왕이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매일성경의 제목은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습니다. 수요예배 이주헌 목사님의 제목은 르무엘 왕이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그의 어머니가 주시는 것이기에 제 마음에 좋습니다. 그러나 제가 묵상하려는 것은 그 부분들이 아닙니다. 어머니, 또는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맹목적이며 열심인가를 묵상하려는 것입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잠언의 내용을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들이 첩을 두지 않았고, 술을 좋아하지 않고 백성들의 억울함을 푸는 것에 집중했으면 아들에게 굳이 충고를 했을까요? 잘하고 있는데, 너 이러면 안 돼! 하고 주마가편을 한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잘한 것에 주의를 주는 행위를 글에서는 보통 사족이라고 말합니다. 필요 없는 말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왕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기에 어머니가 경구가 되는 말을 한 것입니다. 첩에 둘러싸여 힘을 빼고, 기어코 옛 왕들처럼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고, 술에 곯아떨어져 송사를 굽게 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의 신원을 게을리할 우려가 있기에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주의를 준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옛날 새마을 노래를 새벽이면 틀어댔습니다. 노랫말이 이렇습니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잘 살아 보자는 격려로 들릴 수도 있지만 얼마나 못 살았으면 노래를 만들어 매일 들었을까요. 현실은 가난이 우리를 때리고 있었습니다. 르무엘 왕이 여자와 술에 둘러싸여 문제를 만든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사족일 수 있겠습니다.

 

 신앙을 가지면서 저는 하나님 아버지와 딸 둘의 아버지의 심정이 비슷하다는 다소 불경한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자식이 어떤 짓을 하던 사랑으로 보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저주와 복수의 화신이자 민족 차별의 원조쯤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죽이실 때, 그 끔찍함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알았던 하나님 아버지가 그러니 두 딸의 아버지인 저의 자식을 대하는 태도에도 맹목적이지 못하고 합리적이 되려고 그래서 상벌을 분명히 하려고 했습니다. 자식이 잘못하면 지나칠 정도로 억압을 했습니다. 반성합니다.

 

 르무엘 왕에게 어머니가 말을 할 정도면 대충 아들이 어떠했는가 짐작을 하지만 아들이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순종하였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아들이 순종을 않는다는 이유로 충고를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을 저는 봅니다.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순종하는 척하는 것이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순종을 하는 듯, 말을 않지만 속으로는 부모에 대한 분노를 키우는 것이 요즘 세태가 아닐까 의심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라” “ 세상을 이렇게 저렇게 살아라는 부모의 충고가 아이들에게 상처로 남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에게 강요를 하지 않으십니다. 아들이 잘못하면 용서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아들이 수용하는 그날까지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런 하나님 아버지를 보면서 두 딸의 아버지인 저도 조금씩 변해가려 합니다. 아이가 저에 대해 원망을 하면 묵묵히 들어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가 저의 충고를 듣지 않으면 가만히 기다려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서 감사의 눈빛이 뚝뚝 떨어지는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상처가 치유되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힘들 때, 저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합니다. “아버지 저에게 지혜와 힘을 주시고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최근 듣고 본 것에서 인용을 해 봅니다.

불공평하다며

당신을 향해 삿대질을 해대던 그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당신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삿대질을 보시지 않고

그 갈망만을 보고 계셨죠’(빛과 먹선 이야기, 석용욱의 글과 그림을 620일 이찬수 목사가 주일예배에서 인용하여서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란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부모는 아이에게 우주입니다. 부모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해야 하는 상호작용이 있고, 주어야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가 부모에게 잘할 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이 주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상처 받았다며) ‘부모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스무 통을 넘게 보냈지만 태도에 변화도 없고 답변도 없었답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부모 자식 간에는 자식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식은 자식이에요. 자식이 더 억울한 겁니다. 억울함이 깊다면 부모의 의도와는 달리 어떤 형태로든 자식에게 그 억울함이 쌓이도록 상처를 준 거예요.’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서 중요한 첫 번째는 요구가 아닌 조건 없는 수용과 수긍이에요. 자식은 부모보다 어립니다. 그래서 먼저 수긍해야 하는 건 언제나 부모 쪽이어야 합니다. 요구는 자식의 몫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부모가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부모는 이런 요구를 대화라고 착각합니다. 사랑이고 관심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식은 날개를 제대로 펴지 못해요.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지 못합니다.’ (오은영의 화해, 오은영 지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두 딸의 아버지인 저에게도 은혜되게 하소서. 아멘.

예스24에서 가져옴. 내가 찍은 사진은 별로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