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소설집입니다. 이야기 속에 빨려 들지도 책을 놓지도 못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이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글을 끊어 정리했습니다.
6. 내겐 휴가가 필요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불철주야 반정부 좌익세력을 축출하는 일에 전념했던 형사가 매일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반정부 좌익세력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그는 책 속에서 찾으려 애썼습니다. 그가 해변에서 죽음으로 발견되었을 때 그는 답을 찾았을까요? 그를 찾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안도하거나 아쉬워했을 수도 있지만 그를 이해하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해는 사라지고 이용은 넘치는 세상입니다.
7.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잊어버리려 했던 목록’ 같았던 사진에서 기념사진으로 변한 ‘흑두루미와 함께 한 노을’ 시리즈의 사진을 찍었던 사진작가는 버려진 미아였던 김경석의 코디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잊기 위한 사진이 아니라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처음 찍었다고 짐작합니다. 그의 평전을 쓰겠다는 그는 고통 가득한 엄마의 죽음을 보며 ‘죽음’은 이해한 듯했지만 엄마의 ‘고통’은 알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같은 외로움을 느꼈던 사람들은 서로 이어집니다. 충분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연결되어 죽음과 삶이,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것이 사람이 사는 방식인 모양입니다.
8. 웃는 듯 우는 듯, 알렉스, 알렉스
외국의 도시를 여행하면서 머문 도시에서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던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머문 도시를 주제로 잡지를 만든 것이겠지요. 필요해서 그랬던 것인지 서로 사랑해서 관계가 지속되었는지 짐작만 할 뿐이지만 이들의 스폰서가 된 ‘리 선생’을 만나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잡지를 만듭니다. 그의 이야기는 누가 언제 어디서 기록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변합니다. 글만 바뀌지 않습니다. 관계도 변합니다. “이제 그가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서 첫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그는 어둠 속 첫 문장들 속으로 걸어갔다.” 알렉스가 재클린을 잃고 리 선생과 헤어져 어둠 속으로 걸어갑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서 ‘어둠 속’이란 표현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인생의 이야기가 주어진 여건에 따라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웃을지 울지 “그때그때 달라요”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도 다 같은 말인 듯합니다. 알렉스의 표정이 보입니다.
9. 달로 간 코미디언
눈이 멀고 있는 중에도 무대에 섰던 코미디언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한 후 사라졌습니다. 달로 갔다고 합니다. 그가 달로 간 것은 우연한 사고였을까요? 오랜 징후가 있은 뒤에 오는 필연이었을까요? 우연이라는 망치에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는 필연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사는 요령이라는 작가의 주장입니다. “내가 지지리 복이 없어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가 견디기 쉽다고 합니다. 우연과 필연을 구분하는 일은 우연과 필연을 설명하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과 필연을 생각하게 하는 말의 휴지기, 예를 들면 한숨을 쉬는 소리, 말 사이의 침묵, 침 넘기는 순간, 그런 이야기 사이의 공백에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습니다. 달로 간 코미디언의 딸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제 나름대로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도 정확성에 대한 의심이 생깁니다. 소설을 쓰는 작가의 글이 세상에 나오면 그 글을 이해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제대로 읽었던 쪼대로 읽었던 작가의 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는 회의적이지만 그럼에도 노력하자고 하면서 노력을 다른 말로 바꾸면 사랑이라는 주장입니다. 기왕이면 마음 편한 이야기였으면 했는데… 고구마를 물 없이 먹은 듯합니다. 엊그제 본 영화가 생각납니다. ‘대외비’라는 영화였는데, 다 보고는 괜히 봤다 싶었습니다. 노력은 협잡의 다른 말이었습니다. 영화보다는 작가의 회의감이 조금 더 낫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이어 말한 노력은 힘들어 보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 의지하고 싶어지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 은혜 베푸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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