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운동은 테니스입니다. 공을 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다행히 저의 아파트에는 코트가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8시경, 코트에 나가면 아무도 없습니다. 박스볼을 치고 땀을 내는 일상을 매우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넓은 코트를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사람이 없으니 문제가 생길 일이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사람과 사람이 엮이면서 만들어집니다. 공에만 집중하는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고 집중의 시간이며 무념무상의 시간입니다.
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동호회가 됩니다. 테니스에도 동호회가 있습니다. 복식을 위주로 경기를 하니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테니스를 치려는 공동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입니다. 이해관계가 생길 틈이 별로 없고 따라서 갈등도 적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모였으니 조그만 다툼도 있고 때로는 다툼이 커져서 서로 얼굴을 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흔한 일은 아닙니다. 테니스 동호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소설로 쓰면 재미있을까요? 자신 없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는 사소하거나 단순한 일상을 무대로 펼쳐집니다. 넓은 땅,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일상은 좁은 땅에 사는 우리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가 얘기하는 사건과 사고는 지구촌 어디에서나 누구나 볼 수 있는 사소한 일상으로 보입니다. 우리 눈에는 일상으로 스쳐 지나가던 일이라 뇌신경이 수신하지 못하는 신호들을 작가는 잡아내고 기록합니다. 특별한 재능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쫓아 가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를 이해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수록된 소설의 제목처럼 ‘무슨 일이요?’ 묻고 싶기도 했습니다.
식당을 방문한 뚱보 손님을 서비스했던 유경험자인 주인공은 남편과 침대에 누워 자신도 뚱뚱해져 남편이 조그맣게 되어버리고 제대로 자기를 안지도 못한다는 상상을 하면서 (무덥고 짜증 나는) 8월, 뭘 기다리는지도 모르지만, 인생이 변할 것이라고 느낍니다. ‘뚱보’라는 제목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의 마음을 알 듯 모를 듯하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을 저는 느꼈습니다. 이웃집을 봐주면서 부부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자꾸 궁금해집니다(이웃 사람들).
작가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조금은 불행하고 얼마간은 실패한 삶을 경험합니다. 외롭고 불행한 사람들은 사랑을 갈구합니다. 자기를 보호해야 하는 본능 같은 것으로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이 많은 것을 보호하지는 못합니다. 사랑 그 자체는 어떨지 모르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주는 사랑이란 게 그리 믿을 게 못되기도 합니다. 갈구한 사랑이 갈구했던 그 모습으로 반드시 오는 것도 아닙니다. 화해의 제스처가 반드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닙니다. 믿었던 사람이 ‘개새끼’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라는 게 구차하다고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구차하지만 살아야 한다는 비루함은 절박함을 넘어 강인함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2년 전 아내의 바람을 시간이 지나 확인하고 방황하며 안절부절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며 사람을 읽어가는 그의 이야기에 숨까지 죽였습니다. 부부의 대화는 단속을 거치며 의심이 만든 어둠 속에는 빛나는 아이들도 보색대비처럼 공존합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고 해서 확고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그건 이야기꾼도 이야기 속의 남자도 여자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렇게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칼로 두부를 자르듯 쉽게 살아내는 것은 진짜 삶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젊은 시절 함부로 썼던 칼로 인한 상처가 내게도 있을 것 같아 옷을 벗고 흉터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살면 살수록 어려운 게 인생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작가가 경험했던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인 삶도 관심을 갖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비극을 보기 싫어 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전쟁터에 가는 아들에게 전쟁을 경험했던 아버지는 전우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조언합니다(인계철선, 리 차일드) 우리는 모두 전쟁터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고인이 된 나이 많은 전우의 명복을 빕니다.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빨간 집. 리브 앤더슨 지음. 최유솔 옮김. 그늘 간행 (1) | 2024.08.01 |
---|---|
인계철선. 리 차일드 지음. 다니엘 J. 옮김. 오픈하우스 간행 (1) | 2024.07.31 |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소연 지음. 돌고래 간행 (0) | 2024.07.22 |
대성당(CATHEDRAL).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간행 (0) | 2024.07.18 |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지음. 장영문 옮김. 문학동네 (2) | 2024.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