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이 슬지 않는 그릇을 스뎅이라고 불렀습니다. 스테인리스를 스뎅이라고 부른 것은 아마도 일본식 영어발음이 아닌가 추정합니다. 녹(스테인)이라는 말을 인간에게 붙인 것은 인간에게 낀 때를 말하는가 봅니다. 인간이라면 살면서 때를 탈 일이 생깁니다. 유림에서 꼿꼿하기로 유명한 고학자들이 선비기질을 지키며 고고히 살았다는 전설은 있지만 머리가 크면서 그들의 뒷방 생활까지 고고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고고하게 살지 못한 저의 회환으로 인하여 질투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살면서 어찌 때를 타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원자들이 섞여 고압 고온 등의 조건에 의해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것은 순수한 원소가 잡종의 물질로 변하는 것이니 이 또한 때를 탄 사례라고 굳이 주장합니다. 순수를 강조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순수한 상태만을 고집하면 때가 탄 유기물의 탄생을 기대할 수 없듯이 유기체인 인간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때를 탈 수밖에 없다는 말을 긍정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덜 나무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해하라며 변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하물며 책임져야 할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대충 넘어가며 유들유들 금실금실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세상살이는 그렇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자신이 민감해서 그럴 수도 있고, 타인들의 혀 세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관계 속에서 형성된 자아는 스스로 평가하고, 어울려 사는 타인에게서도 평가를 받게 되어 흔들립니다. 상수만 있는 간단한 방정식이 아니라 여러 변수가 어우러져 사건과 사고를 만드니 무신경하게 살기 쉽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경험입니다. 당시 다니던 직장보다는 나을 듯하여 은행에 지원을 했습니다. 직장 선배와 상사에게 거짓말을 하고 필기시험을 쳤고, 면접을 오라고 해서 여의도의 어느 건물로 갔습니다. 은행의 임원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같은 방에서 면접을 둘씩 봤는데 아는 얼굴이었습니다. 같은 대학을 나왔던 동창인데 안면이 있었습니다. 면접관이 서로 아느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은 알지만 서로 대화를 하는 사이는 아니다는 대답을 못하고 그만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질문이 이어지면서 둘 다 사회성도 없고, 정직하지도 못하다는 인상을 줬을 겁니다. 저는 낙방을 했습니다.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합격했다고 해도 몇 년 뒤 그 은행은 사라졌으니 당시 낙방이 불행 중 다행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며 상황이 헝클어지는 것을 경험한 후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심은 그 후 다시 깨졌습니다. 위기를 모면하려는 거짓말이 이번에도 역시 상황을 악화시켰습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픈 생각은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낀 때에 비례합니다. 때가 낀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거짓말도 있지만, 자신이 떨어진 상황에 휘둘려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다는 표현도 있으니까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거나 치료를 거부해서 낀 때도 있습니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바로잡으려 마음을 다잡아도 저 밑에 박힌 돌을 빼야 합니다. 밑돌을 빼면 돌탑 전부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수도 있습니다. 때가 껴 고색이 찬란하면 좋겠지만 때란 것이 찬란함을 가지기에는 원천적인 결함이 있어 쉽지가 않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때로 인하여 회환과 후회가 가득한 인생 말년이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시간이 갈수록 치유와 회복의 기회는 사라집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삶이 겉으로는 아무리 야무지고 단단해 보여도 쉽게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야무지고 단단한 탑이 쉽게 허물어지는 이유는 예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사소한 어떤 사건, 사고일 수 있습니다. 그 불예측성이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낀 때는 우리가 선택했던, 어쩔 수 없었든 그리고 우리와 공존하고 상존하는 당연사라 생각을 하든 어떤 불길함을 줍니다.
사람은 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습니다. 속의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럴 것 같은 사람이 나와 사회적 신분이 다르고, 소득 수준이 다르며 성이 달라 타인의 오해를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식들이 오해로 무장하고 아비를 비난하며 관계를 청산하라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회적 지탄을 근거없이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을 신체적으로 위협한다면 당신은 포기하겠습니까? 당신이 살면서 가졌던 때를 지우려다 새로운 때를 한 바가지씩 여기저기서 덮어쓴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러나저러나 인간에게 낀 때는 청소 불능일까요? 인간 존재의 증거 증명인 ‘인간의 때’에 관한 이야기는 몇 세대 전의 미국인에게도 부조리였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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