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킹의 말입니다. “‘장르’라는 단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공포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탐정 소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바다 이야기, 순수 문학, 기타 등등도 좋아한다” (314쪽) 작가가 그냥 하는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악몽을 파는 가게는 ‘악몽’이라고 하니 공포 소설에 속하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의 악몽에는 ‘기타 등등’이 숨어 있습니다. 생활고에 지쳐 아이들과 함께 동반자살을 하는 이야기에는 칠순이 넘은 노인들의 삶이 같이 등장합니다. (허먼 워크는 여전히 건재하다) 죽음은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는 말이 생각나면서 사회가 보호하지 못한 사람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악몽은 무엇일까 마음이 복잡합니다.
죽은 아내를 보내지 못하고 공동주택 안에 시신을 숨겨둔 남편의 이야기는 무섭기보다는 측은해집니다. (컨디션 난조)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성급한 마음에 재촉을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보따리를 퍼뜩 풀지 않습니다. 지루한 야구 이야기지만 이야기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눈 깜빡 감는 사이에 이야기를 놓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같은 야구 이야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철벽 빌리)
죽음을 알리는 저승사자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습니까? 젊은 시절 길을 가다 잠깐 만났던 아름다운 사람이 저승사자로 온다면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을까요? 미스터 여미 혹은 미스 여미를 만나 죽음을 준비하는 것도 행운일 듯합니다. (미스터 여미)
죽을 듯한 고통, 더 이상 살고 싶은 욕구를 잃게 하는 끔찍한 아픔의 색은 무슨 색일까요? 고통은 실체가 없는 것일까요? (초록색 악귀)
일 년에 기껏해야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한민국 육군에서 2군단에서만 1,000개나 되는 종이관의 구입의사를 타진하고, 3000개의 영현백을 구입했습니다. 종이관은 화장을 할 시신을 담는 그릇이랍니다. 영현백은 바디백이라 불리는 시신을 담는 봉지입니다. 계엄이 성공해서 준비한 영현백이 사용되고 종이관에 갇힌 시신이 화장되는 모습을 본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버스를 타고 수거된 세력들이 불타는 모습을 지나가며 본 당신의 이야기 같습니다. (저 버스는 다른 세상이었다)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당신은 중독되지 않을까요? 당신이 선택한 수단이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일으킬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부고)
경쟁심이 일으키는 사건과 사고는 본질을 알게 되면 그 사이에 제삼자를 끼우지 않을 것이라는 작가의 인간관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하면 지나칠까요? (취중 폭죽놀이)
그리고 악몽을 파는 가게에서 마지막으로 진열한 이야기는 핵전쟁으로 남은 두 사람과 한 마리 떠돌이 개의 이야기입니다. (여름 천둥)
좋은 드라마는 재미있는 요소가 폭이 넓고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웃음과 함께 슬픔이 있고 교훈과 함께 경쾌한 유머가 있어야 합니다. 섬세한 감성을 자극하고, 우직한 힘도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깊고 넓은 재미를 줄 수 있습니다. 그저 무서운 이야기인 악몽을 파는 가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의 말을 믿습니다.
. “‘장르’라는 단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나는 공포 소설을 좋아한다. 그런가 하면 탐정 소설,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 바다 이야기, 순수 문학, 기타 등등도 좋아한다” (3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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