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 강 시집. 문학과 지성사 간행

무주이장 2025. 3. 17. 12:00

 

  제가 사는 동네는 선거방송용 그래픽에서 빨갛게 물든 지역입니다. 수도권이건만 그렇습니다. 40이 갓 넘은 친구가 동네가 마음에 안 든다며 요즘은 더욱 불안하다는 심정을 전했습니다. 윤의 탈옥을 도운 세력이 도처에 암약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이웃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진 것입니다. 미니시리즈 중에 첫 한두 회는 재미있다가 갈수록 지루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요즈음의 시국이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누가 더 불안할까 생각해 보면 본색을 드러내면서 점점 조여 오는 올가미에서 탈출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쪽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윤의 탈옥을 도운 쪽이 쫀다는 말입니다. 걱정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더 쫄리겠냐? 걱정하지 말자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세상 걱정을 안고 살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우리 이웃들은 걱정에 지쳐 삶을 절망 속에 방기 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다른 듯합니다. “영리한 사람들은 남은 삶을 위해 영혼의 상처를 애써 봉합하려 한다. 그러나 한강의 화자들은 고통과 마주하는 일을 피할 생각이 없다. 절망과 무기력에 빠질 생각도 없다. 한강에게 상처의 고통을 지속하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한 일종의 방법론이 된 듯하다.” (146쪽 조연정의 해설 중에서)

 

  우리는 그동안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효용감을 잃은 세상을 살았습니다. 과거가 반복되는 세상의 효용감은 불과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즐겼습니다. ‘너희 것들이 감히…’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응하는 것에 무기력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범들을 포획한 사건은 과거가 현재를 살릴 수 있다는 체험 그것이었습니다. 과거를 살았던 그리고 죽었던 사람들이 우리를 움직였습니다. 절망과 무기력에 빠졌던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시인의 이야기가 현실의 충고가 되었고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는 공감대를 만들었습니다. 걱정을 같이 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의 시 중 어느 한 편도 편안한 게 없습니다. 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불편함은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시인의 걱정과 불편함은 우리를 불편하게 합니다. 불편해서 간혹 책을 덮지만 결국 다시 펼칩니다. 세상을 살면서 이 정도 걱정과 불편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살려는 것은 염치없는 일일 겁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고 안 본 척 못 들은 척하며 사는 게 쉬울 수도 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워 스스로 서랍에 넣을 때 그가 겪은 불편함을 이해 않으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은 둔 시인의 마음에서 서정성을 찾은 제가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걱정되어 거리를 가득 메운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지루한 미니시리즈도 곧 끝나고 이어진 시즌 2는 시원한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을 기대합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