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매미가 살아요” 시집의 발문을 쓴 시골 섬진강 가에 사는 시인 김용택이 놀랐답니다. “아스팔트 사이사이 겨울나무 헐벗은 가지 위에 휘영청 쏟아질 듯 집을 짓는” 새를 보고 놀랐던 모양입니다. “부우연 서울 하늘 무색타 까맣게 집을 짓는” 새가 시골도 아닌 서울에 삽니다. 모두가 싫다며 진저리 치는 서울, “거기 이렇게 당당하게 최영미”가 있음을 김용택 시인은 확인합니다. “응큼 떨지 않는 서울내기 시인”으로 소개된 최영미 시인의 시는 솔직합니다. 그 솔직함의 연유를 거슬러가면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이며 사회에 대한 솔직한 자기 발언”이며 최 시인의 “좌충우돌의 사투가 한 편의 시에서 응큼 떠는 우리들의 정곡을 찌른다”라고 김 시인은 소개합니다.
시인과 작품에 대한 소개에서 정직함으로 가슴을 파고들어 공감을 주는 경우는 근래 보기 드문 경험입니다. 이 시집은 1994년 발행된 시집의 개정판입니다. 세 편의 시를 버리고 과도한 수식어를 쳐냈다고 합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발문과 추천사로 후배를 격려해 준” 김 시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김 시인은 발문 마지막 문단에서 최 시인을 한정 없이 격려합니다. “나는 최영미가 삶의 시선들을 더욱 고루고루 넓히고 세계를 내 품에 품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를 바란다. 조불조불 쩨쩨한 우리들의 그 좁은 문학 동네를 과감히 찢고 우리의 현실을 담아내길 바란다. 말이 위장병을 낫게 하고 말이 사람을 죽인다. 말을 좇지 말고 말에서 싹이 나야 한다. 바른 문학 좋은 문학은.” 이렇게 보기 좋고 듣기 좋은 말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싹이 나는 말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시인의 시를 읽던 중 좋은 그림이 그려지거나 공감이 가는 시구를 정리했습니다.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사랑은 온다/ (중략) / 어쩌면 사랑은 온다/ (중략)/ 주저하는 나보다 먼저, 그것이 내게로 온다 (먼저, 그것이)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가을에는)
도둑맞은 첫사랑이 부패하기 시작하는 냄새 진동하던 그 여름의 오후,/ (중략)/ 곶감 터지듯 하늘 벌어지고 떨어진다 떨어진다 아- 누가 있어 밑에서 날 받쳐주었으면 (사랑이, 혁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해/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 (혼자라는 건)
이렇게 너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어느 가을날 오후,/ 부부처럼 만만하게 등을 댄 채 (과일가게에서)
가난은 상처가 되지 않고/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던/ 어리고 싱겁던// 나의 봄을 돌려다오/ 원래 내 것이었던/ 원래 자연이었던 (돌려다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겨울이 가을을 덮친다// (중략)/ 층층이 무너지는 소리도 없이/ 죽음이 삶의 마지막 몸부림 위에 내려앉는 아침 (북한산에 첫눈 오던 날)
고통은 고통끼리 정붙여/ 살 맞대고 물어뜯는 밤,/ 치욕은 또다른 치욕으로만 씻기느니/ 아무것도 그냥은 사라지지 않는다 (폭풍주의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느날 오후에 대해/ 아, 끝끝내, 누구의 무엇도 아니었던 스무살에 대해/ (중략)/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요/ 내 노래에 맞춰 춤을 춰줄, 한사람쯤 있는지요 (나의 대학)
세 여인이 졸고 있다/ 한 여인의 머리가 한 여인의 어깨에/ 한 여인의 어깨가 한 여인의 가슴에/ 한 여인의 피곤이 다른 여인의 시름에 기대/ 도레미 나란히 (지하철에서 4)
해마다 맞는 봄이건만 언제나 새로운 건/ 그래도 벗이여, 추억이라는 건가 (또 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알루미늄 새시에 잘려진 풍경 한 컷(내 속의 가을)
나는 내 시에서/ 돈 냄새가 나면 좋겠다// (중략) // 나는 내 시가/ 동전처럼 닳아 질겨지면 좋겠다 (시(詩))
시를 내 맘대로 읽습니다. 이렇게 조각을 내도 감흥은 그대로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시집 사서 읽으라” 친구가 나무랍니다. 그래서 시집을 사서 읽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최 시인의 시집을 몇 권 전에는 샀더랬습니다. 여러분도 꼬옥 시집은 사서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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