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두 번 태어났다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셰프스키와 함께 독서 모임을 가지며 차르에 반대하는 토론을 하였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형 집행 직전, 니콜라이 1세의 사면령이 도착하면서 그는 사형을 면하고 노역형을 받아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이 경험은 ‘죄와 벌’을 비롯한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 (註 그의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인의 정서와 우리의 정서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11월 13일 ‘모비 딕’의 아버지
1851년 오늘, 뉴욕에서 ‘모비 딕’의 초판이 출간되었다. 바다와 대지의 순례자였던 허먼 멜빌은 몇 권의 책을 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이 된 ‘모비 딕’은 초판도 다 팔리지 않았다. 다음 작품 역시 운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멜빌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힌 채 죽음을 맞이했다. 성공과 실패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고 본질적이지도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였다. (註 최근 벽돌 같은 그의 책을 읽었다. 고래잡이 배와 선원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만이 기억난다. 고래에 대한 집념의 본질은 복수심이던가? 선장의 집념으로 많은 선원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나쁜 기억도 있다.)
11월 21일 역사상 가장 슬픈 경기
1973년의 칠레는 군부독재가 정권을 장악한, 감옥 같은 나라였다. 국립경기장은 정치범 수용소이자 고문실이 되었다. 칠레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소련 대표팀과 경기를 가질 예정이었다. 피노체트 독재 정권은 이 경기를 국립경기장에서 열겠다고 선언했다. 이 경기장에 수감되어 있던 포로들이 급히 다른 곳으로 이감되었다. 전 세계 축구계의 최고 권위자들은 경기장과 흠잡을 데 없는 잔디를 조사한 후 축복을 내려주었다. 소련 대표팀은 이 경기를 거부했다. 입장권을 산 1만 8천 명이 경기를 보러 들어와 텅 빈 골문에 골을 넣은 프란시스코 발데스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오늘, 칠레 대표팀은 한 사람도 출전하지 않은 소련 대표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註1 1973년 9월, 칠레에서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사회주의 정부를 대체하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중략) 칠레 정부의 과거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노체트의 17년간의 강압적인 군사독재로 3천 명이 넘게 사망했으며, 고문 피해자도 수만 명에 달했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는 1천 명이 넘었다. 註2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친위쿠데타를 벌였다. 만약 그가 성공했다면 사망자와 고문 피해자 그리고 실종자가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하기만 해도 끔찍하다. 친위쿠데타로 내란을 일으킨 자들은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색출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사회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11월 23일 할아버지
1859년 오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처음으로 인쇄되어 나왔다. 초고에는 다른 제목이 붙어 있었다.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였던 에라스무스 다윈의 책에 경의를 바친다는 의미에서 ‘동물생태학 Zoonomia’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에라스무스 다윈은 14명의 자녀와 많은 책을 낳았다. 그는 싹을 틔우고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나는 자연의 모든 것에 공통의 기원이 있으며, 이 공통의 기원은 신의 손이 아니라는 사실을 손자보다 70년 앞서 밝혀냈다. (註1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철학자 에라스무스 다윈은 1794년에서 1796년 사이에 ‘동물생태학’을 저술, ‘단순한 원시적 생물이 서서히 변화하고 발전한다’고 주장했다. 註2 ‘난 데 없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나타나는 현상은 거의 없다. 다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할아버지 영향을 받아 그가 관찰한 현상들을 통찰할 수 있었다. 세상 일은 거의 그렇게 일어나고 발생하고 나타난다. 잊지 마시라.)
12월 1일 무기여 잘 있거라!
코스타리카의 대통령인 ‘돈 페페’ 피게레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 나라의 모든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1948년, 그는 결국 군대를 없앴다. 많은 사람이 세상의 종말 혹은 적어도 코스타리카의 종말이 올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도 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스타리카는 전쟁과 쿠데타에서 해방되었다. (註 호세 피게레스 페레레 일명 ‘돈 페페’는 3선 대통령을 지낸 코스타리카의 정치인이다. (중략) 1944년 민주당(훗날 사회민주당으로 개명)을 창당하였으나, 얼마 후 데오도르 피카도 정부의 부정선거가 드러나자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혁명을 통해 기존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하였다. 내전으로 심각한 피해가 일어나자 그는 군대를 폐지하였고, 여성과 흑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12월 13일 합창의 날
1589년 교황 식스토 5세는 거세당한 아이들이 성 베드로 성당에서 노래하도록 명령했다. 끊임없이 지저귀며 고음을 내야 하는 남성 소프라노들은 성가대가 되기 위해 고환을 거세당했다. 3세기 이상 거세된 남성이 교회 성가대에서 여성의 자리를 대신했다. 성전의 순결함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죄인인 이브의 딸이 내는 목소리가 성당에서 금지된 탓이었다.
12월 16일 빈곤 퇴치를 위한 싸움: 숫자로 거짓말하기
지난 몇 년 동안 주류 언론은 나팔을 불고 북을 두드리며 빈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빈곤이 물러가고 있다고 했다. 2007년에 이르기까지 늘 그랬다. 세계은행의 전문가들이 국제통화기금과 유엔 산하 기관의 협조를 받아 전 세계 인구의 구매력 통계를 업데이트했다. 거의 배포되지 않는 ‘국제 비교 프로그램’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전에 측정된 몇몇 데이터를 수정했다. 다른 작은 오류들 중에서, 그들은 국제 통계에 기록된 것보다 5억 명이나 많은 빈곤층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12월 17일 작은 불꽃
2010년 오늘 아침 무함마드 부아지지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과일과 채소를 실은 수레를 끌고 튀니스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경찰이 와서 어처구니없는 죄목을 지어내 벌금을 징수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 무함마드는 벌금을 내지 않았다. 경찰은 그를 폭행했고, 수레를 뒤집고 땅에 흩어진 과일과 채소를 짓밟았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자신의 머리에서 발끝까지 석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노점상보다 작았던 그 작은 불꽃은 며칠 만에 전체 아랍 세계에 퍼졌다. 더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댕긴 것이다. (註 튀니지 혁명 혹은 재스민 혁명. 2010년 12월 17일부터 2011년 1월 14일까지 튀니지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26세 청년 무함마드 부아지지가 부패한 경찰에 분신자살로 항의한 일이 발단이 되었다. 튀니지 민중은 반정부 시위로 독재 정권에 저항했고, 이 민주화 운동은 이집트, 리비아 등 다른 아랍 국가에도 확대되어 이집트의 무바라크 정권과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다.)
12월 31일 말의 여정
208년, 세레누스 삼모니쿠스는 로마에서 ‘비사’라는 책을 써서 치유에 대한 자신만의 발견을 공개했다. 두 황제의 의사이자 시인이며 당대 최고 도서관의 주인이었던 그는 수많은 치료법 중에서도 '3일 열병'을 피하고 죽음을 쫓아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제안했다. 가슴에 단어 하나를 걸어두어 그것을 통해 밤낮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주문은 바로 ‘아브라카다브라’였다. 이는 고대 히브리어로 다음과 같은 의미였고, 지금도 똑같은 의미이다. “너의 불꽃을 세상 끝까지 퍼뜨려라.” (註1 '3일 열병'은 일정한 주기로 발열이 나타나는 감염병. 일반적으로 ‘플라스모디움 비박스’에 의해 발병하는 말라리아를 가리킨다. 이 유형의 말라리아는 발열, 오한, 발한이 48시간 주기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사흘마다 증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註2 서양에서 흔히 마술을 걸 때 주문으로 사용하는 이 말은 ‘아브라카다브라 알라카잠’을 줄인 것으로, ‘말한 대로 이루어지리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지만, 고대 아람어로 된 문장 ‘Abhra Ke-dhabhra(말한 대로 이루리라)’, 또는 Abhdda Ke-dhabhra(말한 대로 되었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보편적이다. 이외에도 히브리어로 ‘아브레크 아드 아브라’가 기원이라는 설도 있다. 註3 책을 보는 즐거움이다. 그냥 듣던 노랫말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 외 레이디 가가도 불렀던 노래 제목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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