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소설 읽기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고인이 되신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을 읽은 후로 기억합니다. 사창가의 포주인 형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그와 갈등하는 동생은 식물로 상징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형이 만든 우리를 태우며 탈출하는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완전범죄에 가까운 방화를 꿈꾸고 실행합니다.
문학의 힘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깨어졌습니다. 세상을 통찰하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소설가는 세상을 개혁하는 요령을 깨치고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젊은 시절 약육강식 먹이사슬로 합리화되던 세상은 사실은 협잡과 사기와 공갈 폭력이 난무하는 부조리일 뿐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은 무기력한 현실을 위로하는 진통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것입니다. 사람을 이해하기보다는 사람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등 사회과학의 책을 읽게 된 이유입니다.
최은영 작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단 한 번이라도 공감한 적 없는 듯한 삼촌을 빗대어 “그런 그가 글을 쓰고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나는 늘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합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런 점에서 최 작가는 문학인입니다. 그것도 아주 탁월합니다. 주인공인 지연의 아픔은 작가의 글을 통해 저도 절절히 공감했습니다. 바람을 피우고도 진정한 사과를 하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미움과 남편을 사랑했던 마음, 결혼을 결심한 이유와 결국 이혼을 결심하는 이유의 근원에 대한 설명 등 작가가 유도하는 길을 따라가며 지연의 아픔을 절절이 공감했습니다.
지연이가 자기 방어를 위해 결국 엄마를 공격하는 패턴의 반복도 지연이와 엄마의 마음을 공감하지 못하면 마음 아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연이와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증조모 이정선의 결혼생활과 새비 아저씨와 새비 아주머니와의 인연, 그리고 정선의 딸이자 지연의 할머니 박영옥과 김희자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증조모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새비 아주머니와 그의 딸 희자의 이야기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직조되면서 무늬는 구체화됩니다. 구체화된 이야기는 공감을 얻었습니다. 읽는 내내 저에게 공감이 된 부분은 고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감동으로도 나타났습니다. 고통과 감동은 눈물이었습니다. 몇 번이나 울었습니다. 답답해서 울었고, 슬퍼서 울었고, 암울했던 시대라 눈물이 났습니다. 감동이 격해서도 울었습니다.
“증조모는 작은방으로 가서 희자를 깨워 왔다. 증조모와 희자가 보는 앞에서 새비 아주머니의 몸은 조금씩 달라졌다. 흉곽의 떨림이 사라졌고 목의 떨림도 사라졌다. 그리고 입에 남아 있던 마지막 숨이 빠져나갔다. 증조모와 희자는 새비 아주머니의 몸을 안고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그대로 내버려 뒀다. 시간은 새벽 다섯 시였다.”(294쪽) 마지막 문단 “새벽 다섯 시였다”에서 봇물 터지듯 눈물을 흘렸습니다. 새벽 다섯 시가 너무 슬펐습니다. 하필이면 책을 읽는 시간도 새벽 그즈음이었습니다.
사회과학책을 읽었던 후기를 써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사회를 분석하고 통찰하고 이해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사회과학의 영역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과학이라고 해서 냉정하고 냉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도 사람이 존재합니다. 사회를 이해하려면 사람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문학도 사회과학도 심지어 자연과학도 같은 강을 따라 흘러가는 것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설명을 하려면 역부족이지만 느낌은 그렇습니다.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한림원에서 그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역사라는 사회과학, 트라우마라는 의학, 연약함이라는 심리학,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문학은 작품 속에서 만납니다.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도 다름 아니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을 다시 만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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