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티처. 서맨사 다우닝 장편소설. 신선해 옮김. 황금시간 간행

무주이장 2024. 8. 13. 10:57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많은 교사들이 공분을 느끼고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교사들이 민원 일선에서 학부모들에게 시달리고 학교 내에서 어떤 행정적 지원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듣고는 저의 선입견을 또 한 번 확신으로 채웠습니다. 학교 행정과 학교 행정의 책임자, 그리고 일선 학교를 감독하는 교육청 그리고 교육부에 대한 불신이 굳어졌다는 말입니다.

 

 촌지가 난무하던 시절, 제 친구 아버지인 교장 선생님은 특정한 날이면 상납된 돈봉투를 방에 펼쳐놓고 친구 어머니와 함께 정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아이가 보는 것은 그 당시 보통의 집들이 방이 몇 칸 되지 않는 좁은 공간이라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믿습니다. 설마 아이가 버젓이 보고 있는데 그런 모양을 일부러 만들지는 않았겠죠. 고향에 살고 있는 친척 형수는 시골에서 조그만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조카는 담임선생의 말을 자주 전달했습니다. “선생님이 커피가 필요하다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려형수는 커피와 함께 조그만 후원금을 보태 아이 편에 학교로 보냈습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입학 원서를 쓸 때, “네가 왜 실업계를 가냐? 시끄러. 인문계로 가!” 윽박지르듯 강요했던 선생이 공부를 더 잘하는 아이가 실업계를 가겠다고 하자 아무 말없이 선뜻 원서를 작성합니다. 아이는 왜 내게는 인문계로 가라는 조언을 하지 않지궁금했습니다. 두 아이의 차이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을 하실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나이 들어 차지한 자리에서 교사들의 고충을 해결할 의지와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백년하청으로 보입니다.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현실이 녹녹지 않다는 말을 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경기를 하는 것은 불평등한 현실을 목격할 때입니다. 우리 세대라고 불평등을 좋아한 것은 아닙니다. 교장은 교감을 쪼고, 교감은 교사를 쪼면서 권위를 세우고, 권위는 불평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위계라고 강변하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현실의 벽을 느꼈지만 깰 생각도 의지도 약했습니다. 비판에 대한 공격을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느끼고는 살의를 가지고 위협했기 때문에 사회적 목숨인 직업을 걸고 싸워야 하는 두려움에 무릎을 꿇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귀농을 했던 젊은이들 중 교사 출신이 많은 것은 부부가 교사여서 적어도 한 사람의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되고 시골로 전출이 쉬운 것도 이유가 있겠지만, 강압적이고 고식적인 직장의 문화와 분위기가 작용을 했을 것으로 저는 짐작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협이 살의를 가질 수 있다는 개연성을 이야기로 엮으면 아마도 서맨사 다우닝의 이 책 티처가 되겠습니다. 교사가 가진 권위에 도전하는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나 상급자, 하급자에 대한 살의는 근거 없는 소신을 가진 편협한 자의 정신병적 현상이라 비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시작된 소설은 뒤로 갈수록 흥미를 유발합니다. 연쇄 살인이 발생함에도 경찰과 연방수사기관인 FBI는 맥을 놓친 채 수사는 방향을 잃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혈연은 쉽게 무시되지만 사회적 계급은 존중되는 까닭이 아닐까 막연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사건의 해결이 임박했을 때 이야기는 독자의 허를 찌릅니다. 살의는 다른 살의로써 해결됩니다.

 

 최근 읽은 경제학에서 저자는 경제학을 배워야 전문가의 사기행각에 놀아나지 않는다고 충고합니다. 일부분의 사실을 전체의 사실로 호도하며 해결을 자신하는 것은 틀렸다는 주장입니다. 옳습니다. 권위가 사람을 죽이지 못하도록 우리는 많은 노력을 수년간 했습니다. 민주 사회가 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시스템도 만들었다고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2년 동안 우리 사회는 망가지고 무너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권위에 반대했다고 항명의 수괴로 몰았고, 잘된 수사가 용산의 관심으로 망가졌습니다. 독립을 부정하는 자가 독립기념관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위에서 쪼면 대가리 숙이고 죽은 듯이 지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 피살을 감당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한 사람의 용기에 기대서 저항을 했지만 우리가 만든 민주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길 기대합니다. 누군가가 살의로써 스스로 망가지며 해결책을 찾는 비극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법이 살아있고 민주사회를 사는 이웃이 살아있는 이야기가 읽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맨사 다우닝의 책이 썩 좋다고는 않겠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