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올림픽이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엊그제 배드민턴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섭섭함을 토로했습니다. 기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나왔습니다. “안세영 선수, 협회 직격” 이와 유사한 제목을 붙인 수많은 꼭지의 기사가 보입니다. 선수와 협회를 두고 양비론도 나오고, 어느 한쪽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조금 자중하면서 우선 협회에 대한 섭섭함을 이야기하는 선수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선수보다는 협회가 선수 선발과 훈련 지원 등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갑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불리한 약자(또는 피해자)의 입장과 그의 섭섭함을 충분히 듣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라고 믿습니다.
보통의 경우, 문제가 생기는 것은 강자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문제는 외부로 잘 노출되지 않습니다. 외부로 노출되는 경우는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표할 때입니다. 약자의 피해가 외부로 노출될 경우 처음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위선일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 강자가 만든 문제는 무수히 많다는 것을 익히 아는데, 단지 노출이 없다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위선을 떨다가 문제가 노출되면 해결책을 찾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과 원인, 발단을 확인하고 청소하는 일에는 무력하고 게으르고 나아가 교활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최진영의 소설에서 제가 본 것은 안세영의 인터뷰가 일으킨 문제와 처리 과정 그리고 결과를 예언한 것에 다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제목 ‘이제야 언니에게’를 처음에는 ‘지금에야 언니에게’로 이해했습니다. 선입견이 단단히 들어섰으니 강간 피해자인 ‘제야’의 성이 ‘이 씨’인지 ‘김 씨’인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소감을 정리하려 책표지를 다시 보고는 제가 이해한 제목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피해자 ‘이제야 언니에게’ 작가 최진영이 쓴 글임을 알았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용이 제야가 겪은 성폭행에 관한 것임을 알면서 책을 덮을 생각도 했습니다. 읽고 나서 우울감이 닥칠까 두려웠습니다. 읽을 책은 많은데 굳이 우울한 이야기로 나의 마음까지 우울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싶었습니다.
피해자가 겪는 분노, 우울감, 패배감, 무력감, 복수심, 배신감, 자기 모멸감, 자해는 누군가의 적절한 도움을 받았으면 생기지 않았거나 극복이 가능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건이나 사고를 접하고는 주어진 조건이 녹녹지 않다며 굴복하거나, 귀찮게 생각하며 무시하거나, 사건 사고의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탓하고 조롱하면서 스스로 만든 문제는 스스로 처리하라고 강요합니다. 문제의 원인과 발단은 조금씩 졸아들다 결국은 사라집니다. 사건의 이유와 원인을 따지는 것은 해결에 방해가 된다는 억지 논리가 피해자의 발을 걷어찹니다. 맞아 휘청거리는 피해자에게 종용한 해결책은 오히려 피해자의 입을 닫으라고 강요합니다. 조용히 있으면 귀찮지 않을 텐데 괜히 떠벌려 일을 키운다며 피해자를 강박하고 피해자가 밝힌 사실들을 다시 주머니에 담아 주둥이를 단단히 묶으려 합니다. 피해는 보상을 하면 되고 괜히 가해자를 만들어 죄인을 만드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게 어른스럽다고 강변합니다. ‘이제야’의 피해는 부모에 의해 숨겨집니다. 자기를 보호할 줄 알았던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상처는 딱지가 생기지도 않고 낫지도 않습니다.
‘이제야”의 아픔은 누구도 고칠 수 없습니다. 처음 도움을 청할 때 적절한 치료만 했다면 어른들이 말하는 해결이 되었을 텐데 어른들의 어른스러움은 아이에게 치유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오히려 주었습니다. 제야는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기도 한 삶을 끌어안았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위로와 공감의 마음을 가득 안은 작가의 글은 사건이 일어난 후의 제야의 마음을 절절히 알려줍니다. 우울한 이야기에 우울해질 걱정을 한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작가가 제야를 이해하는 마음은 공감을 일으키며 제야의 아픔을 제대로 보게 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우울하지 않았습니다. 응원을 하며 제야가 건강해지길 기원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제야의 부모가 아니라 상처 입은 제야를 묵묵히 지키며 보호하고 위로한 이모가 되고 싶었습니다.
안세영 선수가 소셜 미디어에 올린 글 중 ‘자기의 이야기에 고민을 하고 해결을 해주는 어른’을 기대한다는 말은 비록 다른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제야가 하고 싶었던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야가 겪은 사건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해결을 한 제대로 된 어른이 있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피해자 중 적어도 한 명은 줄었을 것입니다.
오늘 기사에는 배드민턴 협회장이 귀국 후 한 인터뷰가 기사화되었고, 전문가를 자처한 사람들이 양시론과 양비론의 뻔한 썰을 계속 풀고 있습니다. 기시감이 드는 여전한 반응을 보면서 이번에도 제대로 된 어른을 보지 못할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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