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나면 큰아이가 버리는 옷이 큰 비닐로 한 자루나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옷이 거의 매일 택배로 배달되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아르바이트 뛰고 노임을 받은 날 뒤, 월급을 타기 시작한 후로는 월급을 받은 날 후 거의 일주일 동안은 늘 택배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많지도 않은데 저렇게 많은 옷을 어떻게 사서 입을까 궁금했습니다. 비법은 가격이었습니다. 아이의 옷은 가격대가 비싸야 3~4만 원 정도이고 대부분은 만 원을 넘기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아내도 아이의 소비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비싸도 오래 입을 옷을 사라는 주문을 하면 아이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옷을 사주겠다고 해도 따라나서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취향에 맞는 옷을 사기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쇼핑을 하는 재미가 더 좋았던 모양입니다.
한 철 입고 버리는 옷이라고 해도 쓰레기가 된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의류 재활용통에 넣으면 누군가가 소중히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 근처에 중고의류를 수출하는 회사가 있어서 구경을 갔더니 큐브로 만들어 포장하여 컨테이너에 싣고 있었습니다. 수출을 한다고 합니다. 아나바다가 전 지구적으로 퍼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역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젊은 친구가 이제는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고 주위에 선포하고 행동을 하면서 그가 겪었던 일들을 차분히 설명하는 책입니다. 매달 팟빵에서 패션프리처로 불리는 분의 패션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었는데 패션업의 밝은 면과 함께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사 모든 이치가 그렇지요.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밤과 낮이 있듯이, 어둠과 밝음이 대조되듯이 패션업계에도 화려함 이면에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젊은 저자가 경험하고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은 간단합니다. ‘재활용과 재사용을 한다고 해서 의류 쓰레기를 대폭 줄일 수 없다. 자본주의는 하나라도 덜 소비하는 방향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만드는 쪽을 택한다. 만들어진 옷은 될 수 있으면 오래 입어야 한다. 입다가 싫증 나면 남에게 넘겨라. 자신에게는 헌 옷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새 옷이 된다.’ 이렇게 생활하면 쇼핑 중독에서도 벗어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권합니다. 이렇게 하면 쓰레기 량이 줄고 탄소 배출량도 줄어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옷을 사지 않는다고 해서 멋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그가 사지 않고 득템한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을 통하여 증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패션에 관심이 없습니다. 저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해져야 옷을 버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을 살았기에 싫든 좋든 가진 습관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 딸의 소비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조그만 돈으로 많은 옷을 사는 것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많이 사서 입고 버리면 누군가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하는 아나바다 운동이 전 지구적으로 활성화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젊은 저자가 전하는 정보를 접하며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민낯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디에나 나타납니다. 여기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러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힌트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새로운 단어들을 접했습니다. 패스트 패션,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스페인 브랜드 자라, 스웨덴 브랜드 H&M, 미국의 GAP, 중국의 쉬인, 리드 타임, 울트라 패션, 플로깅, 계획된 진부화, 베블런 효과, 럭셔리 브랜드(명품이라고 해석하지만 사치품이란 뜻), 재고품을 소각하는 전략, 올해의 색 지정, 패션 위크, 신상품 공개의 의미, BOGO마케팅, 방글라데시 자나플라자 붕괴사고, 윤리적 다운 인정(RDS), 시발비용, 심리학 용어인 공서, 컨셔스 패션(의식 있는 패션), 그린와싱, 빈티지, 하울, 소유 효과, 미니멀리즘, 과시적 비소비, 프리우스 효과, 반소비주의, 수리할 권리, 리페어 컬처, 미닝 아웃, 원웨어(wornware, 파타고니아 의류제조정책이라고 함), 순환섬유전략, OOTD(Outfit of The Day, 오늘의 패션, 오늘 입는 옷차림이란 뜻) 등이 그것입니다.
세상은 넓고 강호에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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