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노부토모 나오코의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를 읽고 치매를 가진 가족을 돌보는 사연에 관심이 더 생겼습니다. 그래서 몇 권의 책을 더 빌렸습니다. 아내도 노부토모 나오코의 책을 읽어보고는 소장하고 다시 읽고 싶다고 해서 예스 24에 책을 주문했지만 품절이라는 이유로 불발에 그쳤습니다. 치매의 고통을 지켜보는 가족의 모습을 담담하게 소개한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윤이재 작가의 책은 아흔 살의 슈퍼우먼을 돌보는 젊은 손녀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시절 실컷 일을 하셨다며 아쉬운 게 없다는 아랫니 여섯 개 밖에 남지 않은 슈퍼우먼 할머니가 손녀와 일상을 같이 한 이야기가 위의 일본인이 쓴 책 마냥 담담하게 그림을 그리듯, 동영상을 촬영하듯 전개됩니다. 그러고 보니 두 작가의 경험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돌보면서 어찌 당황스럽고 황당하며 고통스러운 일이 없겠습니까 만 그들의 이야기는 거기쯤 있을 혼란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랑이 묻어나고 안타까움이 흐릅니다. 그래서 쉽게 읽고 있는 듯하지만 결코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슈퍼우먼이 건강하실 때 작가는 그의 돌봄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추억과 기억이 할머니를 돌보는 일에 선뜻 나선 동력이 되었지만 그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돌봄에 대한 자랑이나 공치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읽는 동안 계속 그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같이 안타까워하고 같이 아쉬워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애탔을까? 작가의 글은 정제되고 단순화되어 세련된 단어를 배제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증상이 악화되고 육체가 소진되어 하늘로 날아간 슈퍼우먼을 보면서 아내는 자신이 돌보고 있는 할머니와 겹쳐져 보였을 것입니다. 목욕하기를 거부하시던 할머니가 어느 날은 목욕 준비를 하시고 아내를 기다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표지에 그려진 할머니를 다시 보았습니다. 일본인 할머니와 한국인 할머니는 다른 그림이지만 같은 할머니였습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영면을 기도합니다.
P.S.1: 이 책 말고도 강현숙이 지은 ‘치매지만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도 읽었습니다. 심리학을 전공한 작가의 글은 신앙을 가진 치매환자를 돌보는 교인들의 입장을 중심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이야기를 읽어보면 강 작가도 가족 중 치매 환자가 있고 돌봄을 경험한 것으로 짐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치매환자를 어떻게 다루고 돌봐야 하는지를 설명하지만 위 두 권의 책과 결이 달랐습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설명할 때 주의할 것은 가르치려는 듯한 태도이거나 말투입니다. 하나님은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치매이든 아니든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치매지만 사랑받는 게 아닙니다. 치매라도 사랑받는 게 아닙니다. 전에 읽은 김현아 씨의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는 책에서 딸이 무너지는 과정을 의사인 어머니가 전하면서 전문성이 가진 약점을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보완을 한 것 같아 그의 이야기에 깊이 동화되었던 경험이 없었다면 강 작가의 책에서 장점만을 보았을 것입니다.
P.S.2: 최근 주간지에서 본 기사가 생각납니다. 병상 브이로그를 만드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기사였습니다. 세상이 변해 과거에는 숨겼던 이야기들을 공연히 보여주는 분들이 있어 우리는 숨겨진 세상을 더 잘 이해하고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위로하면서 혹시 언젠가 닥칠 미래의 사고에 대비하는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고통은 나누면 줄고, 기쁨은 나누면 커진다는 말이 괜히 생긴 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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