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라틴어로 된 학명을 줄줄 외우시는 보건소장님을 지켜본 아이의 추억담입니다. 어느 먼 아프리카의 오지에 있는 마을 같은 80번지 마을에 장티푸스가 퍼집니다. 하수도 시설도 없는 마을이라 조금 큰 도시라면 여기저기 한 곳 이상에는 있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 ‘똥골’같이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마을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80번지 대장쥐가 장티푸스를 퍼뜨린 원흉이라며 쥐를 잡아 하수구 구정물이 모이는 개천에 버립니다. 복개천 아래로 찾아간 보건소장님은 장티푸스균을 퍼뜨려 쥐를 박멸하려던 계획이 틀어져 쥐는 장티푸스에 면역을 가졌다며 장티푸스를 옮기는 종은 이 세상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밖에 없다고 주민들에게 설명합니다.
신발을 버릴까 봐 하수가 흐르는 개천을 맨발로 들어갔다 깨진 병에 발을 다쳤습니다. 피가 흐르는 맨발로 양손에 신발을 들고 집으로 들어온 저를 보고 어머니가 왜 신발을 신고 도랑에 들어가지 않았냐고 나무랐습니다. 신발이 더러워지면 안 될 것 같아 그랬다는 저의 대답에 어머니는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더러운 개천에는 신발을 신고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서 세상을 배웁니다. 별것 아닌 듯했던 그 기억들이 사실 지금까지 버티며 스스로를 지킨 힘일지 모릅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는 말은 어린 시절 못 먹어 배고픔을 극복하는 방법이었는지 모릅니다. 도둑질을 할 정도로 배고픈 것은 아니지만 늘 배가 고팠던 기억만 남았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는 말은 그럴듯한데, 설득력은 작습니다. 실제 그렇게 하면 버틸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군대를 빼면 저 소리를 자주 듣던 곳은 학교입니다.
머리를 빡빡 밀게 하고는 교복을 입혔습니다. 수업 중 선생에게 질문을 해도 그날 선생의 기분이 나쁘면 쓸데없는 질문이라며 때리고, 날씨가 궂으면 시문 하냐며 때리던 선생이 유독 많았습니다. 선생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고 했으니 경제성장이 한창일 때 소외되었던 직업이라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 중 하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선생이라는 직업이 한때 대단한 직업이 되었다가 요즘 다시 괴로운 직업이 되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학교 추억담을 들으면 누구든지 호되게 억울하게 선생에게 당한 이야기를 적어도 하나씩은 할 줄 압니다. 저도 억울했던 경험담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 반골 기질이 생긴 이유 중 하나는 권위를 내세워 개인적 불만을 해소하던 엉터리 못난 선생에 대항하다 든 나쁜 습관일 것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서이초등학교에서 학부모 갑질을 이기지 못해 세상을 떠난 선생님은 이십대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이 학부모에게 시달리면 교감이나 교장이 방패막이가 되어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 혼자서 감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제 얘기는 아니지만 이 사건에 대하여 일리가 있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의 학부모는 어린 시절 선생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 경험이 있는데, 학교를 다녀온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맞았다, 나쁜 말을 하더라 들으면 흥분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내 새끼에게 같은 아픔을 주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로 응징을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지금의 교감이나 교장 선생들이 과거에 만든 업보를 젊은 교사들이 애꿎게 감당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사실 유무를 떠나 이런 설명을 하는 그분도 과거 선생들의 학폭 트라우마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군대를 제대하고는 군대가 있던 방향으로 오줌도 싸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처럼 악으로 깡으로 버티려던 중학생은 친구를 잃고 견딜 힘을 잃습니다. 중학생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지금의 사회를 민주사회로 만든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과거 학폭을 일삼던 선생들이 반면교사로서의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한 것으로 해몽을 하려고도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죄상이 용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도 폭력에 둔감했던 죄가 있는 늙은이로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그랬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죄는 죄고 잘못은 잘못입니다. 아픈 자가 아프다면 때린 자가 잘못한 것입니다.
김연수 작가를 따라 어린 시절로 갔습니다. 전근대적인 직업인이 찾은 보람 덕을 받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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