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제과점과 첫사랑 그리고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가겟방이라는 말이 있던 시절입니다. 가게라도 얻으려면 집 보증금을 빼야 했습니다. 추가로, 덧붙여, 하나 더, 별도로 얻을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가게가 빵집이라도 되면 거기에서 책보 들고 나오는 아이는 보기 좋습니다. 술을 파는 가게에서 교복 입고 나오는 언니라면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미장원에서 나오기 싫어 사주경계 후 나오는 남학생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뉴욕에는 절대로 없을 법한 ‘뉴욕제과점’이 김천 어디쯤 있다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 김천역을 나와 광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마당을 나와 뉴욕제과점이 있던 자리의 국밥집을 찾아가는 작가의 발길이 어딘가 익숙합니다. 김천역을 지나간 경험이 있어 그랬던 모양입니다. 김천역 옆 무주에서 넘어오면 처음 맞는 황금시장통 리어카에서 파는 도너스 파는 가게를 자주 찾았습니다. 그것도 가게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죠
‘첫사랑’,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잊힌 줄 알았던 누군가가 떠오르고 그때 사랑했다는 기억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라고 어떻게 확신을 하십니까? 지나가던 길에 만난 그 아이, 한눈에 반해버린 그 아이가 첫사랑이라고요? 내 마음 중심을 잃고 밤낮으로 설레어 비틀거리던 그 감정을 주었던 그 사람이 첫사랑이라고요?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 가만히 생각하면 저는 사랑을 하지 못했던 것이 확실합니다. 자기만 좋아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을 했다고 그것이 사랑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노란 나비가 좋다고 쫓아가 결국에는 짓밟아버린 마음과 행동은 사랑이 아니었고, 나를 싫어한다고, 좋아하지 않는다고 비웃는 아이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상처 입었다고 대드는 것도 사랑은 아닙니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충만하게 메운 그 따뜻한 느낌'을 공유할 때라야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망가뜨릴 수 없는 그 사랑'이 바로 첫사랑입니다. 저는 이제야 그 첫사랑을 배우고 있는가 봅니다. 사랑의 대상이 흐뭇한 눈길을 보내면 그저 황송할 뿐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똥개는 있었습니다. 저보다 서너 살이 많은 집안 형이었습니다. 하는 짓이 똥개 같아 붙은 별명인지 같이 놀아본 경험이 없어 모르지만 순한 사람입니다. 똥개는 집안이 어려워 일찍 운전을 배워 기름밥을 먹습니다. 어느 추석날 상포계에 늦게 온 똥개는 요즘은 고속버스를 몬다며 고속버스 회사 입사 후 교육을 나가서 선배에게 호되게 당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포계원 중 기름밥을 먹었던 친구들이 반이 넘습니다. 지긋지긋했던지 기회가 되면 공사현장 함바를 하거나 다른 일로 호구책을 바꿨습니다. 마을마다 비극은 하나씩 있습니다. 작가가 말한 비극의 주인공 똥개는 우리 마을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비록 칼이 날아다니지는 않았지만 형제간 의가 깨져 두 번 다시 보지 않는 비극입니다. 비극의 씨앗은 잘난 아비가 두 여자를 거둔 집에서 싹이 텄습니다. 피를 본다는 말은 무협영화나 갱 영화처럼 빨간 피 만 흘릴 때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마을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안 왔습니다. 지금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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