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와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는 조카가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와 함께 멧돼지 사냥을 간 경험담입니다. 삼촌과 조카가 나누는 대화가 격의 없어 좋습니다. 되바라진 조카의 대답에 성질을 낼 법도 한데 삼촌도 그의 친한 도라꾸 아저씨도 쉽게 용인합니다. 나이가 멀다고 친하지 않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저에게는 격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삼촌은 없지만, 그리고 내놓고 바람을 피워 두 집 살림을 한 삼촌은 없지만(삼촌의 사생활을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믿습니다) 할머니를 꼬드겨 하나 밖에 없는 고구마 밭을 잡혀 돈을 챙겨간 삼촌은 있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살림까지 차린 삼촌이 여자와 헤어지고는 죽겠다며 먹은 수면제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으며 앞에서 씩씩거리는 멧돼지를 쏘지 못하는 삼촌의 맑은 눈에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끊는 것이 어렵기만 하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안타까움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덩치가 산만한 멧돼지를 잡으려고 줄무늬가 아직도 선명한 어린 새끼를 차례차례 쏘며 결국은 멧돼지 어미를 잡았던 도라꾸 아저씨의 눈은 삼촌의 눈과 닮았습니다. 다른 대상을 두고 같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두 분이 친한 것은 보이지 않는 끈이 매듭지어졌기 때문임을 조카는 알아챕니다. 이런 경험, 살면서 겪지 말아야 할까요? 아니면 알고 싶나요?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얘기하는 것이냐 아니면 생명의 악착스러움, 생명의 절심함을 말하는 것이냐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구분이 없더라도 살면서 일부러 찾는다고 오는 사건도 아니지만 내 마음대로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사월초파일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에서 예정은 집을 떠나 찾은 절에서 잃은 아이를 생각합니다. 아주 절을 떠나지 않을 결심입니다. 지옥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의 이름을 딴 지장회에 어찌어찌 들어가서는 수의를 짓는다는 것이 배냇저고리를 짓습니다. 늙어 죽은 사람을 위한 수의는 두고 젖먹이 아이의 옷을 수의라고 지으니, 나이를 먹은 보살은 예정을 혼내려고 따로 부릅니다. 하지만 혼을 내지 못하고 대신 예정에게 말합니다. “아프지 말아라. 너무 아파하지 말아라.” 예정은 눈물을 짓고 맙니다.
예정과 아이를 만든 봉우는 작전을 나와 주둔지를 이탈해 예정이 있는 산사를 찾습니다. 잠깐 밤사이 산을 넘어 예정을 만나면 자기도 아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도중에 길을 잃습니다. 젊은 연인이 길을 잃고 아파하는 것은 청춘의 피할 수 없는 의무일까요? 쉽게 사랑하고 아픔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요? 두 젊은이의 아픔을 위로하고 싶습니다. 그게 또한 저의 젊은 날에 대한 위로가 될 듯도 합니다.
‘아프지 마세요. 너무 아파하지 마세요.’ 저의 위로도 마음으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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