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심리학자들은 대체로 각 개인의 행복 수준은 안정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설정점’이라고 부르는데,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성격을 반영합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순수한 설정점 이론은 칼뱅주의자들의 예정론처럼 딜레마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정론에 따르면 일부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저주를 받아서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지요. 순수한 설정점 이론은 결정론자들의 관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어떠한 행위 혹은 조정도 개인에게 변화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행복 연구에서 순수한 설정점 이론은 허무주의에 이르게 합니다. 공공 정책 혹은 개인의 의사 결정으로 주관적 행복을 증진할 수 있다는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206~207쪽)
일전에 김태형 소장의 책에서 기존 주류 심리학의 문제점을 설명할 때 비슷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위의 비판은 경제학자의 설명입니다. 경제학자가 추상적인 행복을 설명하려고 하는 책이 ‘지적 행복론’입니다. 무엇이 행복의 조건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차분하게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제한적인 재화를 어떻게 사용했을 때 그 효용을 최대화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합리적인 사람이란 의미의 경제인을 전제하는 학문이라고 경제학개론에서 배운 기억이 납니다. 효용이라는 말을 행복으로 바꾸어도 될 듯싶습니다. 다다익선이면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지요? 경제학자들은 행복이 재화, 재물의 취득, 즉 소득이 많아지면 행복해진다고 믿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경제학자의 주장을 의심하여 소득의 증가와 연관하여 행복이 계속 증가하는가를 연구한 결과,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전에 제가 읽은 책에서 월 470(?) 만원의 소득까지 행복은 증가하다가 그 이상이 되면 행복 증가율이 줄어들고 나중에 행복은 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어 검색했지만 못 찾았습니다) 경제학자인 저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다다익선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그의 설명이 궁금하시면 책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하면 너무 무성의하겠지요?
세상 사람들에게 추상적이기만 한 듯한 행복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의 행복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소득, 가정생활, 건강이 그것입니다. 그럼 이들 조건의 기준은 절대적이냐?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득이 늘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소득이 나의 소득 대비 같이 올랐냐? 나의 소득만 올랐냐에 따라 행복감이 달라지는 것을 저자 이스털린은 확인합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소득이 오른다고 해서 행복감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는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사회적 비교라는 필터를 통해 행복을 감지합니다. 가정생활과 건강은 어떨까요? 타인의 가정생활과 건강에 대한 정보를 쉽게 확인할 수 없어 당사자 본인의 과거 가정생활과 건강을 기준해서 나아지면 행복감을 느낀다는 설명입니다. 상대적 기준이 행복을 좌우합니다.
물론 행복감을 느끼는 다른 기준들도 많겠지만 세상 사람들의 행복기준은 주로 세 가지의 기준이라는 설명입니다. 이 기준이 확대되거나 확충, 보완되는 국가의 정책이 있다면 이 역시 행복감을 증진시킨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국가냐 공산주의 국가냐 아니면 사회주의 국가냐는 중요한 기준이 아닙니다. 어떤 형태의 국가라도 복지 수준이 높아지면 소속된 국민의 행복감은 늘어나고 커진다는 설명입니다. 이런 설명을 관련 자료를 보여주며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책입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행복경제학(지적행복론)을 수용하지 않는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학문의 틀에 갇혀 방법론이 고착된 학문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사람들의 욕망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이런 현상은 심리학, 경제학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닐 것입니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을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망조라고 쉽게 얘기하는 정치평론가들을 보면 쉰 음식을 먹은 듯 신물이 납니다. 현상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정치평론이 없다는 것은 기존 정치학이 생명을 다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게 합니다. 학문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학자가 엉터리인 게지요? 정치학의 회복을 기대합니다.
행복은 사람들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행동합니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행복의 조건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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