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왜소소설(歪笑小說).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재인 간행

무주이장 2024. 3. 10. 13:47

  미스터리 소설을 쓰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미스터리 작가들과 출판사를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마치 드라마의 한 형식인 시트콤을 연상하게 합니다. 연작소설로 볼 수도 있겠지만, 사건을 주도하는 등장인물들이 각 이야기마다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연작소설이라기보다는 시트콤 소설(?)로 해석했습니다. 시트콤은 코미디 장르를 말합니다. 시추에이션 코미디의 줄임말입니다. 그런데 웃기기는 한데 그 웃음이 조금은 이상합니다. 왜소라는 말을 우리말 사전을 검색하면 나오지 않습니다. 몸집이나 생각이 작다는 뜻의 倭小와 우리말 음이 같지만 歪笑는 웃음은 웃음이지만 비뚤어지거나 기울어진 웃음을 말하는 듯합니다. 일본어에는 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한자로 된 말이니 비뚤어진 웃음, 실소와 비슷한 말로 이해했습니다. 영어로는 블랙코미디 정도가 될 듯합니다. 일본어 고수가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설의 편집자

 

 규에이 출판사, 서적출판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골프접대입니다. 작가들의 작품을 받아오려면 작가들이 좋아하는 운동, 그중에서도 5시간 이상을 함께 하며 얼굴을 비출 수 있는 골프를 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못 쳐도 됩니다. 골프장에 나타나 열심히 하기만 하면 50점은 먹습니다. 그렇다고 접대받는 사람보다 접대하는 사람이 월등히 잘 치면 안 됩니다. 이길 듯 질듯 하다가 져야 접대가 성공적입니다. 서적출판부의 편집장이 전설이 된 것은 그의 골프실력이 프로급임에도 작가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라운딩을 능수능란하게 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전설의 편집자인 시시도리의 특기는 골프 외, ‘베스트셀러 작가의 가방모찌’, 필요할 경우 ‘슬라이딩 무릎 꿇기’로 유명합니다. ‘작가 편들기’도 그에게 대적할 만한 편집자가 없습니다. 소설의 첫 이야기에서 시시도리를 소개하는데 이 이야기가 왜 왜소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다 그렇게들 살고 계시지 않나요? 아니 그렇게 살지는 못해도 시시도리처럼 그런 능력을 가지고 싶어 하시지는 않나요? 밉보이면 바로 목이 날아가는 세상입니다. 눈이 내리는 장터에서 90도로 인사를 하는 사람의 날렵한 경공술이 부럽습니다. 이미 눈 밖에 나서 곧 강호를 떠나야 할 것이라는 무속의 평이 있긴 하지만 그의 처세가 부디 성공하길 기원합니다. 그렇게 못 사는 사람이 문제지 않습니까?

 

 

드라마는 나의 꿈

 

 아타미 게이스케는 규에이 출판사의 신인상을 받은 작가입니다. 어느 날 그의 작품을 텔레비전 드라마로 영상화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그는 그의 꿈이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주연을 누구로 하면 좋을까 자랑삼아 여기저기 의견을 듣기도 합니다. 막상 기획서가 왔을 때 그의 소설은 지나친 각색으로 인해 원작의 형태는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작가의 꿈이 새겨진 유리는 마음속에서 큰 파열음을 내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작가가 원하는 제작발표회도 드라마의 광고도 없는 허접한 드라마라는 것을 출판사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작가는 몰랐을까요? 알면서도 포기 못하는 작가의 꿈이 슬픕니다. 슬프면 슬펐지 여기에 어디 왜소가 있습니까? 영상매체가 원하는 대로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을 작가는 아직 모르나 봅니다. 각자도생의 세상에서는 힘이 강한 자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힘없는 작가의 슬픔을 왜소로 인식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세계관이 낯섭니다.

 

 

신출내기

 

 가라카사 잔게는 데뷔 3년 차의 작가입니다. 신인상 수상작 ‘허무승 탐정 조피’를 썼습니다. 그런 그에게 시시도리 편집장이 골프모임에 초대합니다. 원로작가들과 친하게 지내 손해 볼 게 없다는 편집장의 설득에 넘어가 원로작가들과 골프를 치기로 합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나 신진들은 패기로 넘치지만 원로들의 의도적 한마디 평에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가라카사도 그랬습니다. 원로작가들의 세치 혀를 살피다 그는 결심을 합니다. ‘이 사람들(원로작가들을 말합니다)은 누군가가 끌어내리지 않는 한 언제까지고 요코즈나의 자리에 머무를 심산이다. 그래 한번 해 보겠어’ 신출내기의 결심입니다.

 

 원로작가들이 신출내기 작가를 견제하는 말과 행동을 일부러 일일이 소개하지 않았습니다. 원로 작가들이 신진 작가를 견제하는 형태는 굳이 이 책에서 확인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매체의 기사에서 유사한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본보다 훨씬 발전하여 우리는 견제를 압수수색으로 하는 수준까지 갔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더 많은 소설을 수록했지만 소개하다 보니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왜소한 줄 알았던 이야기들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 기사였습니다. 그래도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왜소 국가라는 것을 확인하시고 부러워하실 분들은 이 소설 읽기를 권장합니다. 이건 스포일링일 텐데, 추리소설 아닙니다. 독소소설도 있던 데 읽을지 말지 저는 망설이고 있습니다. 끝.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