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과 피드백 사회: 한국 사회의 독특한 진화 방식 임경빈 지음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은 입에 잘 붙지 않습니다. 대신 ‘관심을 가지면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습니다. 한때 심한 간지방으로 술을 5년 끊었을 때의 경험입니다. 도시는 술로 넘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눈을 들면 절반은 술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술과 연관이 없는 간판을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전에는 간판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막상 술을 끊었더니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메일로 얼룩소의 글이 도착했습니다. 조국혁신당에 관한 글이 보였습니다. 글의 요지는 당초 조국이 정당을 만든다고 했을 때 국민의 지지가 없어 스스로 소멸될 것이라고, 적어도 지금의 지지는 없을 것이었다는 짐작과 함께 현재의 상태에 실망하며 조국혁신당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윤석열의 전제주의보다 조국혁신당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며, 비판의 한 줄기를 선출제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의 주장은 현재도 시행하고 있다고 씁니다. 권력을 위임받은 정당이 책임을 방기하여 생긴 문제를 다시 선출직을 통하여 감시한다는 것이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결국 선출직 대통령이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선출직 공무원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위의 주장은 사회가 다종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를 무시한 말입니다. 대통령과 정당이 책임지고 권력을 행사하여 조직을 운영하면 국가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주장인데 정당이란 조직의 규모나 역량을 매우 과대평가한 듯합니다. 아니면 정당을 심판하고 감시하는 국민들을 매우 무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통령을 감시하는 자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입니다. 그런데 무책임한 대통령이 나왔다면 그래서 국가에 문제가 생겼다면 궁극적인 책임은 국민이 져야 합니다. 그러면 글은 국민의 역량부족을 비판하고, 향후 역량강화를 하자는 글과 제도 보완이 논지가 되어야 함에도 조국혁신당을 비판하는 근거로만 사용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예방하거나 수정하려면 감시하는 자들을 많이 두어야 합니다. 돈을 줘서 고용을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누군가는 무상으로 감시업무용역을 해줘야 합니다. 국민은 정당에게 그 책임을 지우려 하지만, 정당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갑니다. 선거철만 되면 자신들이 적임자라고 하지만, 정당 속으로 피신하여 책임을 피합니다. 이러한 행태를 비판하고 그 책임을 담당하겠다는 정당이 출현했습니다. 자신들을 뽑아주면 감시를 구체적이고 공격적이고 치밀하고 대담하게 하겠다는 정당이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뽑는 과정에 국민, 시민을 참여시킵니다. 이것은 공무원감시용역을 국민, 시민들과 같이 하자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 국민, 우리 시민들은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래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언제나 보이는 것이 제 경험칙입니다.
‘종편 부역자’에서 ‘시사 유튜브’가 된 임경빈이 쓴 글입니다. ‘추월의 시대’라는 책에 수록된 짧은 글입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하면서 해당 사항을 소개합니다. 대부분의 글은 임경빈의 글입니다. 별도의 따옴표를 버립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1982년부터 수십 년간 한국에 거주한 외신기자 마이클 브린은 박근혜의 탄핵을 ‘민심이란 이름의 야수가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정치인을 심판한 과정으로 묘사했습니다. 닉슨이 물러난 시간이 2년 여 걸린 것처럼, 미국법이 적용 되었다면 박근혜는 임기를 다 채웠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럼 우리는 절차와 과정을 무시했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듯이 그렇지 않습니다. 국회의 탄핵발의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라는 절차는 다 있었습니다.
박근혜의 탄핵을 찬성한 국민은 거의 80퍼센트에 달합니다. 한국 유권자의 정무적 판단의 총합이었으며 이를 헌법 내 권력기관들이 수용한 결과가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주장입니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광화문 촛불 시위와 여론 정치를 통해 당파성을 넘어서서 2012년에 박근혜를 찍었던 유권자의 절반이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탄핵이 가능했고 이를 임경빈은 한국을 ‘책임 있는 포퓰리즘’ 사회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부릅니다. 자기 판단을 고집하지 않고 아닌 것 같으면 뒤집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우리들의 정치인, 엘리트 정치는 어땠을까요? 임경빈은 엘리트 정치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지금의 양대 정당의 다툼을 보고 있으면 탄핵을 찬성했던 80퍼센트에 가까운 국민이 당파성을 초월하여 의견의 합치를 본 것이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각국의 1% 국민을 뽑아 경쟁을 시키면 미국이 1등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국민의 10%를 경쟁시키면 아마도 일본, 유럽이 1위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국민의 20~30%를 뽑아 경쟁을 시키면 어느 나라가 1위를 할까요? 저자는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임경빈은 주장의 근거를 국민들이 크나큰 경쟁에 대한 압박을 받으며 긴장된 삶을 매일 살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는 사람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서 그렇다고 제시합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일본의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것도 이들 국민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국민들 중 20%를 넘나드는 사람들이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겠다고 합니다. 조국혁신당은 위법한 공무원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겨달라고 합니다. 더불어 같이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런 정당의 출현에 모두가 놀라면 이 현상을 만든 세상을 잘 분석할 일입니다. 섣부른 비판을 하는 것은 딴지에 불과합니다. 이해가 안 되면 틀렸다는 꼰대 짓이자 게으른 지식인으로 보일 뿐입니다. 조국혁신당의 성공이 국민의 성공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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