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제정신이라는 착각. 필리프 슈테르처, 유영미 옮김. 김영사 간행 6

무주이장 2024. 3. 6. 19:58

예측 기계 뇌가 하는 일

 

  진화의 명령은 ‘현실과 일치하는 세계를 구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존과 번식 가능성이 극대화되도록 세계를 구성하라!’는 것입니다. 현실과의 부합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얘기는 앞에서도 했습니다. 뇌가 세상을 만들어내는 기준은 그것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가령 어떻게 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는가도 기준이 되고,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잘 기능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도 현실에 맞는지 세심하게 비교하는데 필요한 노력이 적절한지 하는 질문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뇌는 이런저런 기준을 고려해 진화의 명령이 따르는 한도 내에서 현실에 부합하는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생존과 번식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기에 인식적 비합리성이 생겨납니다. 이것은 뇌의 아주 ‘정상적인’ 기능 방식의 결과입니다. “버그가 아니라 특성입니다.” 합리적이건 비합리적이건 우리의 확신은 주변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설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존재’를 ‘당위’로 연결시켜 그릇된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합니다. 자연과학적으로 뭔가가 자연적이기에 좋은 것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자연주의적 오류’라고 칭합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인식적 비합리성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서술에서 인식적 비합리성이 규범적 의미에서 좋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선언한다면, 바로 이런 오류를 범하는 셈이 됩니다.

 

  저자는 여러 파트너와 많은 섹스를 하고자 하는 것은 적응적일지 모르지만, 이를 규범적 의미에서 좋다거나 나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예를 들면서 우리는 자신이 섹스를 할지,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파트너와 할지, 피임 도구를 쓸지 등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우리는 개인적, 세계관적, 종교적, 혹은 그 밖의 이유에서 어느 정도로 유전자의 생물학적 명령에 굴복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인식적 비합리성은 좋은 것을 가져다줄 수도 있지만 함정과 위험도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비합리성과 다른 이들의 비합리성을 알고 그것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어떤 기능을 갖는지 이해하면, 그리고 비합리적 사고와 연결된 함정과 위험을 알면, 우리는 ‘지식 있는 생물종’으로서 이에 건설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책의 처음에서 ‘확신은 가설이다’는 핵심 명제를 소개했습니다. 핵심 명제를 설명하는데 책은 주력했습니다. 우리의 확신이 가설이라는 것은 그것이 언제든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세상에는 뇌의 수만큼 많은 서로 다른 내적 모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델들은 많은 면에서 비슷합니다. 우리의 확신은 우리의 예측 기계의 일부로서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능하면 안전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 확신은 우선적으로 진실 추구라는 모토를 따르기보다는, 그것을 넘어서서 사회적 역할과 소속감을 챙기는 등의 구실을 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확신을 부여잡는 것이 타인과 더불어 공존하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지식 있는 생물종’으로서 이런 진화적 경향에 ‘반하여 행동할’ 자유가 있다고 저자는 추천합니다.

 

  책을 리뷰 한다기보다는 정리를 하였습니다. 과학서적은 읽으면서 따라가면 달리 리뷰라고 할 게 없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 자체 논리가 정연하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저자의 과학적인 설득력에 그저 감탄하면서 읽었습니다. 정리하는 과정이 힘은 들었지만 유익했습니다. 읽은 책을 리뷰 하는 것은 언뜻 비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적응성이 영 없는 짓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늘 그렇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끝.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