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천사의 탄식. 마종기 시집. 문학과 지성사 간행 3

무주이장 2024. 3. 6. 14:11

  젊다는 것, 싱싱하다는 것은 생물적인 개념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 달리 마음이 젊은 사람, 생각이 싱싱한 사람 같은 표현은 생물학적인 연령을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선거철이 되면서 각 당에서는 늙은 의원을 젊은 의원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합니다. 마음은 늙지 않았는데, 인생 90부터라는데 고집을 부리며 무대에서 내려오길 거부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자기가 한 행동은 뒤돌아보지 않고 남 탓을 하는 사람들은 생물학적인 나이보다 더 마음이 늙어 노추라고 하는 것을 벗겨내지 못합니다. 자신이 한 일조차 스스로 알지 못하는 데, 어디서 의원을 하겠다는 것인지 망령됩니다. 젊을 때부터 가졌던 소신은 언제 팔아먹었는지 뻔뻔하기까지 할 때, ~ 마음이 늙은 노인은 쉽게 젊거나 싱싱한 경우가 드물구나 깨닫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시에서 늙은이가 늙음을 인정하는 여유를 보았습니다. 안달복달하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보여준 기레기들의 의도를 잠시 잊었습니다. 세상에는 노추를 보이는 노인보다는 멋진 노인이 더 많습니다. 개가 사람을 물었다고 기사를 쓰는 기자는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소식에는 눈을 감습니다. 이럴 땐 눈을 돌려 시를 보면 좋습니다. 시인의 여유로운 시를 소개합니다. 아직 늙지 않았다고, 젊다고 아우성치는 대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에서 젊음을 봅니다. 이런 후보들을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젊고 싱싱한 단어는

 

1

 

젊고 싱싱한 단어는 젊은이들이 가져가고

노회한 단어는 머리 굴리며 냄새만 피우고

누추하게 나이 든 단어만 나른한 소리 연발하며

눈이 어두워진 내 주위를 맴돌고 있네.

어디서 파릇한 단어를 찾아 노추를 숨길까.

 

젊은 단어들이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이슬을 차면서 힘차게 일터를 떠나고

늦저녁에야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펄펄 살아 날뛰는 시들을 한 묶음 안고

아끼는 사람들을 힘차게 포옹한다.

내가 비집고 들어설 곳은 없어 보인다.

 

 이제 나는 한밤에 달이나 열심히 바라보다 달이 하는

말이나 받아 적고 아니면 호박꽃이 피면서 하는 말, 하다

못해 배추밭에서 몸을 흔들며 웃어대는 배추의 웃음이

라도 몰래 받아보아야겠다. 그것도 잘 안 되면 한여름 과

수원의 사과가 시끄럽게 떠드는 말들, 그 말들을 다 걷어

한동안 곱게 응달에 말리면 될까. 그 말에서 나오는 열기

나 습도를 식히고 말리면 가을 햇살에 잘 말린 고추처럼

빛나고 매운 단어를 만질 수 있을까. 냉장고의 야채나 과

일은 언 지 오래되어 말리면 부스러질 터이니 안 되겠지.

나이 들어 살아 있는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

한 일이다.

 

2

 

그리운 곳은 사실 다 변해버렸다.

몸 안에 소중하게 지니고 있던

젊었던 날의 밝고 힘찬 기운도 떠나고

유유자적하던 내 혼까지 침침하게 흐리다.

그늘에 가렸나, 당신도 잘 보이지 않는다.

 

이웃이 외면하는 것을 이제야 눈치챈다.

낚시바늘같이 거북하게 목에 걸리는

아픔 같은 단어, 아쉬움 같은 단어,

밤이 되어도 산천은 더 맑게 깨어 있다.

아니면 내가 잠들지 못하는 것일까

당당하던 등이 굽어지고 밤이 길어진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