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성의 진화: 오류 관리 이론
우리가 합리적인 확신을 가지려는 이유는 생존하고 번식하는 가능성을 높이려는 것에 있습니다.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까운 세계상을 만들 때 우리의 적합성에 이로울 것이라는 것은 자명합니다. 확신의 진실성이 중요한 것은 우리가 현실을 평가할 때 가능하면 실수를 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실수가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모든 실수가 똑같은 무게를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확신을 지녀도 그것이 그리 큰 피해를 가져오지 않을 때도 비합리적 확신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믿으면 안 될 게 뭡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합리성 경향이 긍정적 의미로 적응적일지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심어진 비합리적 사고의 경향이 생존과 번식에 유익이 되지 않을까? 비합리적 확신이 합리적 확신보다도 중대한 오류에서 우리를 더 효과적으로 지켜준다면 비합리적 확신은 적응적 특성일 것입니다(이 부분에서 현대의 월급쟁이들이 지문이 지워질 정도로 자기의 소신에 반하여 아첨을 하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는 깨우침에 이르러 저에게 남은 것은 초라한 지문뿐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자고 하는 얘기입니다).
지각과 생각, 행동에서의 비합리성이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실수의 비용을 계산하다 보니 나타난다는 생각을 오류 관리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비합리적 확신은 실수율을 더 높일지 모르겠지만, 비용이 낮은 실수는 용인하고 높은 비용이 드는 실수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실수율을 높이더라도 적응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클러스트 착각(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지각하는 경향, 한 달 전 두 집 건너 위치한 이웃집이 벼락을 맞았고, 어제는 바로 옆집이 벼락을 맞았다면, 간단한 덧셈만 하면 그다음이 어느 집 차례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얼른 제대로 된 피뢰침을 마련할 것이다)과 ‘과민한 행위 탐지 시스템(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른 사람의 의도, 혹은 높은 존재의 뜻으로 돌리는 경향, 이웃한 두 집이 연속으로 벼락을 맞는 것이 우연일 수 있을까?) 역시 오류 관리 이론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제대로 된 피뢰침을 설치하는 편이(적은 비용), 벼락 피해의 다음 희생자가 되는 것보다(높은 비용) 낫습니다.
오류 관리 이론은 인식적 비합리성을 수긍이 가게 설명해 줍니다. 수긍이 가는 설명을 제공하는 다른 이론도 있습니다. ‘빠르고 간소한 휴리스틱’ 아이디어는 간단합니다. 뇌는 단순한 대강의 원칙을 사용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주 등장하는 결정 상황에 대해 제한된 개수의 단순화된 결정 알고리즘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대강의 법칙의 예로 ‘재인식 휴리스틱’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여러 대상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 친숙하게 다가오는 대상을 고른다는 것입니다. 치명적 오류를 피하거나, 진실을 탐구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다 보니 비용-편익을 위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적응적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면 단지 부정적 결과를 피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존과 번식에 직접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낼 수도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와 세상을 더 좋게 바라보게끔 하는 인지 편향이라 할 수 있는 긍정적 환상이 그런 적응적 이점을 줄 수 있습니다. ‘평균 이상 효과’나 ‘낙관적 편향’이 이에 속합니다. 이런 긍정적 환상은 다른 많은 왜곡과 마찬가지로 오류 관리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법시험에 8번 떨어졌다고 해도(이것은 8년의 루저 세월이 지났다는 의미입니다) 9번째 합격으로 모든 실패를 만회한다면 낙관적 편향이 장기적으로 좋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소속감을 형성하는 비합리성도 적응적입니다. 법률가이자 사회과학자인 예일대학교 댄 카한 교수는 확신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습니다(뇌물을 받은 대통령 부인이 오히려 덫에 빠진 피해자라고 얘기하는 교수는 무엇을 아는지 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 스티븐 P. 스티치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합니다. “자연선택은 진실에 관심이 없다. 그는 재생산의 성공에만 관심이 있다.” 그럼에도 확신이 진실된 내용을 담고 있는가가 진화적 적합성 면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을 리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자연선택이 진실에 관심이 없다는 건 인식적 합리성에 대한 선택적 압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선택적 압력은 인식적 합리성이 선택의 이점을 동반하는 만큼만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인식적 비합리성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승격하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진화론적 설명은 비합리성을 좋은 것으로 여겨야 하는지, 나쁜 것으로 여겨야 하는지 판단하지 않습니다. 규범화하면 오류가 생깁니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왔습니다. 확신이라는 것이 결코 인식적 합리성이나 인식적 비합리성 어느 한쪽의 주장으로 확신도 되고 망상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쪽이든 생존과 자기 복제의 가능성이 큰 쪽으로 적응을 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이제 책은 우리 머릿속에서 확신과 다른 망상적 사고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설명을 시작합니다. 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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