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신 분들이 젊은 제게 해준 이야기를 새겨듣는 경우가 별로 없었습니다. 주변에 달리 사회적 성공을 하신 분이 없어서 그랬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사회적 성공을 하신 분들을 초청해서 강연을 하는 것이 상품이 된 세상에서 나이가 들었지만 역시 듣고 싶은 강연을 하시는 분들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성격이 고집스러워서 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격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유전적 상속을 받은 것이고, 성격을 바꾸는 것이 유전자 조작만큼 쉽지도 않을뿐더러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이 클 수도 있어 위험부담이 큽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먼 아버지 어머니 때부터 적응성을 높여 장착된 유전자가 준 고유한 성격을 바꾸는 것은 생존과 자기 번식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성격을 고치라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살아서 지금의 문명을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젊었던 나이가 힘들었던 나여’ 라는 시 구절에 그만 도를 안 듯합니다. 힘이 들었던 젊은 시절, 빨리 늙어 확실한 길을 걷고 싶었던 저는 누가 어떤 충고를 해도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유배지로 정해진 타국으로 밀려나 살아야 했던 시인에게 젊은 시절은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시인의 생각을 들어봅니다.
늦가을 감기
감기에는 무슨 바이러스도 문제지만
약한 면역력이 더 큰 이유라니
산을 넘어가는 저 바람을 잡아
내일의 행선지를 우선 물어봐야겠다.
끝없는 어지럼증이 머리 뒤에서 돌고
신열과 한기가 가슴을 싸고 도는데
꽃이란 꽃은 시들어 땅에 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오는 심한 이명이었구나.
사연이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곡절을 물으면 모두들 한나절일 텐데
눈감고 떠나는 마르고 작은 꽃씨같이
빨리 늙어 확실한 길을 걷고 싶어서
젊었던 나이가 힘들었던 나여
밤새 잎을 다 털어버린 나뭇가지들
얼어가는 두 팔에 소름이 돋았다.
가을은 그 빈 나무에게 그늘을 내주고
아무도 없이 늙기만 기다리던 내게는
단풍과 낙엽이 가는 길을 보여주었다.
나는 더 이상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감기는 그렇게 내게 왔다.
저녁녘이면 문을 닫아걸던 꽃들이
문도 못 닫은 채 힘없이 고개 숙이고
우리 손잡고 잠자지 않을래? 물었다.
그건 그냥 도움을 청하는 말이었을까,
우리라는 말에 홀려 우리를 마주 안고
드나드는 면역과 병균을 주고받았다.
감기 열도 칼바람 앞에 서면 물러가겠지,
살아갈 날들을 두 손으로 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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