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은 장소가 다르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게 아닌 가 봅니다. 추리소설에서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소가 세상 여기저기 다양하지만 이야기에서 사람을 빼면 마치 음악이 빠진 영화처럼 재미가 없어집니다. 사람 이야기가 빠진 괴수 영화나 잔인한 영상 중심의 괴기 영화가 재미가 없는 이유도 사람의 숨길이 빠져서 그럴 것입니다.
‘늑대들 속의 성길버트’라는 뜻을 가진 몬트리올 오지에 자리 잡은 성질베르앙트르레루 수도원에는 24명의 수사들이 고립되어 생활합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수수께끼“로 불리는 그레고리아 성가를 부르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성가 전문가로 성가를 녹음하여 세상에 그들의 존재를 알린 마티외 수사가 살해당했습니다. 녹음성가의 성공으로 수도원의 노후시설이 개선되고 기대하지 않던 돈이 들어오면서 수도원의 원칙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자는 수사들과 고립의 원칙을 지키려는 수사들의 갈등이 사건의 발단으로 보입니다.
퀘벡경찰청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과 장 기 보브와르 경위가 수도원에서 수사를 시작합니다. 경감 가마슈는 퀘벡경찰청 고위 경찰관의 부패를 수사하던 중 수사를 무마하려는 경찰 고위층과의 마찰을 일으키지만 뜻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경찰관입니다. 결국 고위 경찰관은 유죄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받아 현재 수감 중입니다. 경감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경찰청 고위 간부들과 사이가 벌어집니다. 이들의 수사가 진행되던 중 퀘벡경찰청의 실뱅 프랑쾨르 경정이 합류를 하여 경감과 노골적인 갈등을 표출합니다. 수도원의 갈등과 경찰청의 갈등이 중첩되면서 사람 사는 세상, 사랑과 갈등은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생질베르앙트르레루 수도원의 상징인 뒤엉킨 두 마리 늑대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야기 속에서 복선이 없는 무대는 분명히 아니겠지요. 작가는 수도원 원장의 입을 빌려 소개합니다.
‘수도원을 처음 만든 돔 클레망과 수사들이 오기 전부터 있던 상징으로 선주민이 해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돔 클레망에게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내면에서 늑대 두 마리가 싸우고 있다고 말했는데, 한 마리는 회색이고 한 마리는 검은색이었습니다. 회색은 할아버지가 용감하고, 참을성 있고, 친절한 사람이길 원했고, 검은색은 할아버지가 무섭고 잔인하길 원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소년의 마음을 휘저었고, 아이는 며칠 동안 그 이야기를 생각하다 할아버지를 찾아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어떤 늑대가 이길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가 먹이를 주는 녀석이지.”(582쪽)
우리가 사는 곳 어디에서나 우리가 키우는 늑대 중 어떤 녀석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지 생각을 해봅니다. 580쪽에 이르는 이야기는 지겨운 듯 지겹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다른 세상 속 이야기라 차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그런 느낌이 든 것이겠지요.
'매일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정신이라는 착각. 필리프 슈테르처, 유영미 옮김. 김영사 간행 2 (0) | 2024.03.05 |
---|---|
제정신이라는 착각. 필리프 슈테르처, 유영미 옮김. 김영사 간행 1 (2) | 2024.03.05 |
서울의 동쪽. 전우용 글, 이광익 그림. 보림출판사 간행 (0) | 2024.02.29 |
조인계획.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간행 (0) | 2024.02.25 |
식량위기 대한민국. 남재작 지음. 웨일북 간행 (0) | 2024.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