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과 비정상의 모호함
박문호 박사가 강의를 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니 들은 것 같습니다. ‘제정신이라는 착각’이라는 책명과 짧은 설명을 들었다고 믿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을 갔다가 이 책이 그 책인가? 혹시 착각해서 읽지도 못할 책을 손에 든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책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대중적인 과학서라는 것이 차분히 저자가 끌고 가는 대로 가기만 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읽었습니다. 읽고 난 후 이 리뷰를 쓰지만 오독을 염려합니다. 혹 이 리뷰를 보시는 분은 반드시 책을 통해 확인을 하시기 바랍니다.
엄연한 사실 관계를 두고 논쟁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현실정치를 보는 확신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어떻게 똑같은 사실을 두고 양 극단에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감각기관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 것은 ‘뇌’라면서 이 뇌가 세계에 대한 개인적인 상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본 것을 뇌가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말입니다. 저자는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신경과학이라’ 벌써 머리가 아파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명제는 어떤 확신이 ‘정상적인’ 것으로 혹은 ‘제정신이 아닌’것처럼 보인다 해도, 그것은 언제나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본 것을 말하는 것처럼 얼핏 보이지만 본 것을 뇌가 이해하고 설명하여 만든 가설이 확신이라는 말입니다. 뇌는 가설을 만들어내는 기계입니다. 가설은 현실 적응성이 있을 때에 생명력을 가집니다. 현실과 더 많이 일치할수록 정상이 됩니다. 현실과 일치하지 않을 때에 비정상이거나 망상이 됩니다. 하지만 이 경계를 이분법적으로 가를 경계선은 모호합니다. 현실 일치성의 정도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 인식론과 합리성이라는 기준
우리의 경험세계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점검하는 방법을 철학에서는 대응설, 혹은 ‘진리 대응론’이라 부릅니다. 이론이 주어진 증거와 대응하는가, 즉 증거와 일치하느냐를 묻는 방법입니다. 다른 시각은 이론이 그 자체로 모순이 없느냐는 것을 따지는 것인데 이를 정합설 혹은 ‘진리 정합론’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설명을 하는 이유는 어떤 이론을 판단하는 기준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평소에 이 둘을 결합해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인식론적으로 절대적 진리는 죽었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진실을 결정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는 진화론적으로 생존과 종족보존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법입니다. 진실을 찾는 목적입니다.
확신은 이론과 진술을 내용으로 하기에, 이론과 진술에 대한 내용은 기본적으로 확신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확신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이 가세합니다. 즉 확신은 언제나 사람과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확신은 사람의 일이며, 늘 어떤 확신을 지닌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 확신에 도달해 확신을 고수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대변할 것이며, 증거 상황이 달라지면 어느 정도 확신을 바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합리적이냐 비합리적이냐 하는 것이 ‘정상’적 확신과 망상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문제일까요? 어떤 경우 우리는 합리성이 있다고 할까요? 저자는 일관성을 말합니다. 한 사람의 확신이 그의 다른 확신 혹은 신념과 들어맞아야 합니다. 이를 ‘합리성의 일관성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일관성을 가졌다고 해서 합리성이 있다는 판단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냐는 기준에 다시 부합해야 합니다. 이를 ‘인식적 합리성’이라고 합니다. 즉 확신은 주어진 증거에 부합해야 하며, 이런 부합성에 맞춰 확신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관성과 인식적 합리성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것 외에도 또 한 가지 질문을 제시합니다.
“한 인간에게 어떤 확신이 인식적‘ 의미에서는, 즉 사실에 부합한 내용이냐 하는 것에서는 비합리적일지라도 '실용적인' 의미에서는 완전히 합리적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종교적 믿음과 관련해 종종 언급되는 논지입니다. 이런 ‘실용적 합리성’은 정당한 것입니다. 합리와 비합리의 기준선을 조금 잡은 듯합니다. 그럼 이런 기준에서 벗어난 비합리성은 현실세계에서 배척되고 가치가 없어 존재의 근거를 잃을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합리적 확신의 모든 예는 인식적 비합리성이 결코 망상만의 특성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에게서도 만연한 것임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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