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에 사과꽃들이 한창 필 때 기온이 급히 내려가 심한 냉해를 입었습니다. 꽃이 폈다가 수정도 되기 전에 지면 다시 꽃을 피우는 줄 잘못 알았습니다.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후손을 이을 생각에 죽자 살자 씨를 맺기 위하여 몸살을 앓으면서 다시 힘을 내 꽃을 피우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한 번의 기회는 주지만 그 기회를 잃으면 두 번째 기회는 바로 주지 않습니다. 꽃피는 시절을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가 느긋한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시절에 맞추어 민첩하게 움직이지만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상심한 마음을 수습하고 다음을 기다리는 여유를 배웁니다. 한 해 농사를 망치고서도 꿋꿋이 내년을 준비하는 마음이 농부의 마음입니다. 쉽게 뜻을 꺾지 않습니다.
저자는 기후위기를 설파하면서 미래를 비관적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늘어났고, 평균기온이 계속 오르고 있지만 오히려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은 더 줄었다고 합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도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걱정도 덜 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미 글로벌 테크 기업과 식품 기업들은 탄소 중립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으며.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 기업의 핵심을 이루는 젊은 직원들과 소비자들이 그렇게 인식하기 때문이고, 이는 많은 과학자와 기후 활동가의 외침이 공허하지 않음을 의미한다며 실망을 딛고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저자도 농부를 닮았습니다.
기후변화, 기후위기는 한국인인 저자의 관점에서는 식량문제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식량위기 대한민국’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곡물 자급률과 식량 자급률은 낮습니다. 그동안의 숱한 개발로 우리나라의 농지는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농업기술을 발전시켜 생산성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많은 인구의 식량자급은 자체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식량공급망을 반드시 유지하라고 합니다.
세계정세가 요동치는 이유는 많은 경우 식량이 부족하여 가격이 폭등하고 공급이 불안정할 때 일어난다고 합니다. 식량 폭동입니다. 정권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저항입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식량 사정이 어려울 때 수출을 통제하게 됩니다. 식량 시장에서 큰손으로 불리는 우리나라가 곤경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저자는 외국 곡물 시장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에 대한 농업기술 전수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공동연구를 통하여 해당 국가의 곡물 상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많은 국가들과 밀도 있는 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기후변화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해 주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COP26, IPCC, UNFCCC 같은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얼핏 뉴스를 통하여 듣던 용어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정부 간 협의체가 된 이유, 당사국 총회 등의 우리말이 가진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 많은 투자를 한다는 바이오 리파이너리 기술에 대하여도 관심이 갔습니다. 가축분뇨를 직접 밭에 시비하는 방법이 아니라 비료로 만들어 비축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해 볼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도 냉해가 덮치지 않을지 가지 치는 농부는 걱정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과 한 개의 가격이 10,000원까지 오른 것은 근본적으로 기후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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