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이야기는 불편할까?
“가난을 증명하는 것도 어렵고 수치스러운데, 몸이 아프다는 걸 증명하는 건 더 복잡하고 굴욕적이었다.” 문미순 작가의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찾도록 한 이야기 속 문구였습니다.
지금은 전체학생에게 무상으로 급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무상급식 이슈는 지금의 서울시장이 몽니를 부리다 서울시장 자리를 박원순에게 넘긴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이건희 손자에게까지 공짜밥을 줄 필요까지 없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찬성론자의 논리 중 하나는 어려운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하자는 주장은 아이들이 가난을 증명하게 하여 수치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된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수치심을 얘기할 때 제 눈이 번쩍 떠졌던 기억이 났습니다. 이 주장은 현장에서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아이들의 마음에 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사회와 어른들이 보호해야 합니다. 가난한 아이가 수단이 되는 짓을 공공연히 벌이는 사회와 어른들은 조그만 사회적 책임조차 느끼지 못하는 감성불감증을 가진 불구자들입니다.
민감한 사춘기 아이들이 겪는 수치심은 평생을 이어 치료해야 할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들 가슴속에는 적어도 하나쯤 청소년 시절 입은 마음의 상처를 지금도 앓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수치심을 주면서 도와줘야 공짜를 바라는 거지근성을 버릴 것이다는 생각이 반대론자들의 마음속에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로 우리들의 의무를 잊고 싶었을 것입니다.
문미순 작가의 이야기 소재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불운을 감당하면서 점증하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더욱 깊고 어두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겪는 비도덕적 반사회적 행동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추상적이라 불운도 불행도 그리 비극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화시키지요. 존속의 시신 방치와 연금불법수령의 이야기입니다.
간병하던 어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날아온 연금지급문자에 딸은 어미의 시체를 방에다 숨깁니다. 어미의 매달 지급되는 100만 원가량의 연금에 생물적, 사회적 목숨을 걸어야 하는 딸의 선택이 안타깝습니다. 간병하던 아비를 씻기려다 욕실에서 넘어져 죽은 아비의 시신을 숨기는 일 또한 마음 아픕니다. 이들의 범죄를 형법이 처벌한다고 달려드는 모습을 생각하자 반감이 들었습니다. 그들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동의를 할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불편했습니다. 불편을 핑계로 각각의 캐릭터에 개별적 비난을 하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그런다고 속이 편하지 않을 것은 분명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들 개인을 탓하기 이전 무언가 빠진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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