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없는 삶
철저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알바트로스를 설명하면서 암컷끼리 알을 낳고 그 중 하나의 알 만을 선택하여 새끼를 키우는 경우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경이감을 느꼈습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나요. 수정할 때만 수컷을 찾고 그후 암컷들끼리 알을 낳습니다. 알바트로스의 포란반 때문에 결국 한 개의 알은 포기하지만 수컷을 배제한 채 암컷끼리 새끼를 양육하는 것에서 알바트로스 세계의 창의성을 보았습니다. 가족은 전통적인 모습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동물의 세계에서 확인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무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유성생식이 왜 진화론적으로 우수한가를 이야기할 때 돌연변이의 축적을 방지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여 생존의 가능성을 높인다고 들었습니다. 무성생식을 ‘진화의 막다른 길’이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성생식을 하는 질형목생물의 경우는 무성생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프랑켄슈타인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생명의 신비가 점입가경입니다. 소화를 통해서인지 아닌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훔쳐온 유전자들을 이용하여 외래 DNA를 붙여 유전적 다양성을 준다는 말입니다.
점박이도룡뇽 종의 역사가 500만 년이나 되었다며 이들의 장수비결은 ‘절취생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점박이도룡뇽 암컷은 때로 근연종의 정자를 슬쩍하는데, 자극에만 사용할 뿐 그걸로 알을 수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몇천 년에 한 번씩은 다양성 유지를 위해 과거에 ‘훔쳐서’ 저장해둔 정자의 일부를 게놈에 통합한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암컷으로만 이루어진 종도 성공적으로 존재합니다. 일본 15개 지역에서 잘 발달한 통짜흰개미 집단 74개 군체를 수집하여 조사했더니 그중 37개는 오로지 암컷만으로 구성되었고 나머지는 혼성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흰개미는 원래 여왕과 왕이 같이 사는 군체라고 합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톱상어의 경우는 톱상어 암컷이 자신을 복제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를 보여줍니다. 이는 야생 상어에서 최초로 기록된 단성생식이었습니다. 아니, 야생 척추동물에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 현상이 암시하는 바는 섬뜩합니다. 종이 멸망 직전에 있다는 비극적 티핑포인트의 징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개척적인 단성생식 암컷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일말의 희망으로도 느껴집니다. 적합한 수컷이 나타나면 다시 유성생식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전제하에, 단기적인 전략으로서 복제는 고립된 가계의 명맥을 일정 기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다윈의 견고한 이원적 고정관념을 거스르는 케이스를 정리한 책입니다. 저자는 견고한 기존 이론에 맞서 선봉에 선 일부 과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성에 대한 융통성 없는 결정론적 관점을 넘어 어떻게 발생 과정의 가소성과 행동의 변이가 수컷은 물론이고 암컷의 진화를 부추겼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다양성과 투명성에 진실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생물학적 진실을 밝히는 싸움은 우리가 지구와 그 위에 사는 모든 것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합심할 수 있는 포용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갈 때 반드시 필요하다.”며 책을 끝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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