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밭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슬픔을 말리다’는 대지적인 존재로서 흙에 매인 사람들을 주로 그렸다고 합니다. 시인의 관심이 이러할 진 대 이 시집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가끔씩 다니는 무주는 산골입니다. 무주읍에서 30분가량을 차로 가면 거창과 김천에 접한 무풍면이 나옵니다. 행정구역은 전라북도이지만 억양은 경상도 냄새가 짙습니다. 전라도 단어와 경상도 억양이 서로에게 무던한 산골입니다.
1290미터의 대덕산이 허리를 타고 해발 500미터가 조금 넘는 금평마을로 굽이친 곳에는 사과밭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공투라고 불리는 포클레인이 사과를 지탱할 쇠막대를 박습니다. 돈이 없다고 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작업차량이 없으면 손도 대기 힘듭니다. 포클레인 한 삽을 뜨면 붉은 흙이 혼비백산합니다. 밭을 일구는 작업은 대덕산 허리에 생채기를 냅니다. 그 생채기 위에 붉은 사과가 달립니다. 대덕산의 피가 스며든 과일입니다. 대덕산 턱밑까지 들이닥친 밭을 보면 땅에 매달린 사람들의 갈망이 보입니다. 시인의 시가 눈에 불쑥 들어온 이유일 것입니다.
산으로 가는 밭
끝자락에 묻어둔 삼백평 밭이 해마다 산 쪽으로 슬쩍슬쩍 올라간다. 파뿌리를 뒤집어쓴 저 귀신, 숲을 흔들 때마다 연분홍 살점들 혼비백산, 허공으로 튄다. 하얗게 달아오른 조팝나무 무더기도 낫질 몇번에 뿔뿔이 산까마귀 신세다. 저 성난 호미날은 암탉의 부리처럼 서방의 괭이눈을 콕, 콕 쫀다. 방울꽃 등불을 무작위로 부수거나 광대나물의 광대뼈를 내리치며 참깨밭의 평수를 넓힌다. (중략) 쪼그린 채 생의 종장까지 삼백에다 오십평을 더한 긴 두루마리를 펴서 호미체의 내방가사를 짓는 중. 뒤틀린 손마디가 훑고 간 산의 척추마다 퇴행성관절염을 앓는 호미 자국들, 사금파리처럼 따갑게 남의 눈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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