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 고향을 잃는 중인가 봅니다
류량청은 1962년 중국 신장 사완현에서 태어나 농사일로 잔뼈가 굵으며 자랐고 향토문학작가로 불리는 유명인이라고 합니다. 처음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접했을 때는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의 사람들을 얘기하는 책인 줄 알았습니다. 잘못 알았지만 ‘한 사람의 마을’이나 ‘한 사람을 키우는 마을’이나 둘러치고 메치면 형태를 틀어 숨겼던 말을 꺼낼 수도 있을 듯합니다. 가축을 키우며, 들을 일궈 농사를 짓는 마을 사람들과 섞이면서 일어나는 상념들은 나귀의 속에도 들락거리고, 토끼길을 쫓기도 합니다. 밀을 수확할 때는 밀과 대화하고 수확을 마무리할 때는 홀로 일하며 자신과 대화합니다. 마을 주위를 배회하던 사는 꼴이 변변치 못한 늑대와도 눈싸움을 하며 대화를 시도하기 조차합니다. 먹기라도 하면 밀 몇 단도 주고 싶어 합니다. 한 사람의 마을은 살아 숨쉽니다.
작가의 마을은 오지 마을인 듯합니다. 중국의 시골을 다녀온 경험이 없어서 그랬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주 산골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무주 한 사람의 마을’과 사는 방법은 비슷한 듯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때가 묻은 산골 오지 무주의 마을과 신장의 마을은 많이 다릅니다. 삽을 들어 땅을 파고 나귀의 힘을 빌려 수레를 끌고 다니는 신장의 마을과 달리, 무주의 마을에서는 트랙터와 트럭 엔진의 소음이 농로를 따라 달립니다. 풀을 매는 신장과 달리 무주는 풀약을 칩니다.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같지만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오히려 1960년 대 제 고향 가난한 마을과 더 비슷합니다.
아침이면 자루가 길고 작고 날렵한 날을 가진 가래삽을 쥐고는 뒷짐 쥔채 논물을 보러 가던 동네 노인네들의 모습은 신장의 삽을 든 사람들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워낙 경작하는 논, 밭의 규모가 작아 나귀가 끄는 수레가 필요 없기도 했지만, 좁은 논둑, 밭둑길에서는 수레가 나들 수가 없어 지게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초등학교를 파한 아들이 땔나무할 때 쓰라고 아들의 어깨품에 맞는 작은 지게를 아버지들이 만들어 주던 시절입니다. 아버지의 지게와 아들의 지게가 나란히 마당 구석에 정답게 기대 있곤 했습니다. 마을은 항상 주민 모두에게 노동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부산의 제 고향은 아파트가 논밭을 깔고 앉았습니다. 무주 산골에서는 기계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농약도 칠 수 없습니다. 고향 마을 사람들의 삶은 풍족해진 듯합니다. 무주의 농부도 번듯한 트랙터나 하다못해 경운기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은 경제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마음의 빈곤은 인간상실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한구석이 빈 듯 허전한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면서 도시는 번잡해졌습니다. 번잡함과 편리함속에서 상실감을 얻는 것은 중국인들도 마찬가지 였을 법합니다. 중국인들이 왜 이 작가의 산문집에 엄청난 관심을 가졌는지 얼핏 짐작되기도 한다는 것은 저의 착각일까요?’’ 그의 생각을 따라 신장의 마을길을 걷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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