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민감성이 세상을 살 때 편할까요 아니면 불편할까요? 무심한 듯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민감하지 않다는 평가는 잘못일 것입니다. 무심한 듯 사는 사람은 나름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무심한 사람도 민감한 사람도 그의 우주에서 빅뱅 같은 사건 사고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용서
어릴 적 새벽마다 옆집의 달걀을 몰래 훔쳐 먹었다.
어른들이 이빨에 톡톡 쳐서 먹는 게 너무 멋있어서
나도 계속 훔쳐서 흉내를 냈다.
1주일 후 옆집 아저씨가 알도 못 낳는 게
모이만 축낸다는 이유로 암탉을 잡아 삶았다.
우리집에도 맛보라며 삼계탕 한 그릇을 가져왔다.
아버지가 장남이 먹어야 한다며 나한테 주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난 삼계탕을 먹은 적이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한 누명으로 목숨을 잃은
50년 전의 암탉에게 용서를 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추하고 용서를 비는 시인이 있어 세상이 살 만하다는 생각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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