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4

무주이장 2024. 1. 19. 09:31

 사람에 따라 현실인식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비장한 마음을 갖고 심지와 근육을 태워 장렬하게 전사를 하려 한 시대를 살았던 시인에게 지금의 현실은 비루하게 보일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시인에게 무어라 말을 건넬 수 없습니다. 쉽게 위로도 못하겠습니다. 그의 슬픔에 공감이 갑니다. 그는 슬픔으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입은 여전히 진보를 외칠 것이고

발은 지폐가 깔린 안전한 길을 골라 걸을 것이다.

촛불의 열매를 챙긴 소수 민주주의적 엘리트들 역시

노동대중을 벌레처럼 털어내며 더욱 창대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의회공화국이며

모든 권력도 국민이 아니라 자본과

소수 좌우엘리트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심지 없는 촛불이 아무리 타올라도

우리의 비정규직 민주주의는 여전할 것이고

세상도 기득권자들을 위해 적당하게만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난 촛불이 타오를수록 더욱 슬프다.

 

 소시민적 인텔리라는 말이 고답적인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학생운동을 하던 그때 그 시절의 표현처럼 들립니다. 웅장한 표현이 가슴을 북처럼 울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시인은 우리가 사는 체제를 바꿀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필연적이든 우연이든 우리가 선택했던 강요당했든 간에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재단하고 가봉하여 만든 시대를 입고 살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세상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견은 있겠지만, 이제는 어떤 영웅이 있어 우리 시대를 재편하는 시절이 오기에는 세상이 너무 다양해졌고 세계는 넓어지고 이해관계는 깊어졌다고 믿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살려면 우리가 같이 어깨를 겯고 있는 사람들, 우리의 이웃들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이웃이 미쳐 날뛰더라도 그를 제어하는 이웃이 있고, 흥에 겨워 세상의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곁에서 도울 이웃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우리의 이웃들이 조금씩 힘을 가지게 되고, 그래서 의회공화국을 이길 힘을 가까운 미래에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혹 생각보다 늦어지면 어떨까 생각하지만 조바심을 낼 일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이런 연유로 시인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아마도 시인은 시인이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자가당착의 위로이지만 말입니다.

 

 우리 시대의 꿈은 90%가 자본의 덫이다라는 말에 자꾸 끌렸습니다. 카풀로 출퇴근을 하는 내내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로 의견이 끝내 갈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젠 정권이 부동산 연착륙을 이유로 노골적으로 다주택자들을 편드는 정책을 폅니다. 빚을 내서 비싼 집을 사라고 하면서 엄청난 빚을 권합니다. ‘이익은 사유화, 손실은 사회화노래가 백주 대낮에, 버젓이 방송됩니다. 지난 정권 집값 급등에 난리를 치던 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높은 집값을 유지하라는 몽니에도 아무런 말도 못 합니다. 빚에 치인 자들이 욕망을 가래처럼 뱉습니다.

 

시인의 분별은 늘 필요했습니다. 이는 그가 감옥에 갇혔던 그 시절에도 그랬고, 소시민적인 인텔리들이 많아진 지금도 그럴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편을 가르고 무조건 배척하기에 익숙합니다. 이제는 주장에 찬성을 하면서 주장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의견에 반대하면서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분류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야기는 다 들어보자는 말입니다. 양쪽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사는 방식은 편파적이면 어떨까요? 조금은 덜 피곤하고 약간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요?

 

 회사에서 일을 할 때의 경험입니다. 어떤 사람은 뿌리를 찾아 위로 올라가며 원줄기와 그로부터 분기한 줄기를 찾아내고 잎과 꽃을 피우고 열매를 수확했습니다. 한편 다른 사람은 잎을 만지고 꽃을 따면서 열매를 확인하고 잔가지로부터 원줄기를 따라서 뿌리로 내려가는 방식으로 일을 다루고 이해하였습니다. 둘은 늘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찾던 답을 얻었습니다. 적절한 예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는 말입니다. 중언부언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