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악의 평범성. 이산하 시집. 창비시선453. 3

무주이장 2024. 1. 19. 09:15

촛불은 갇혀 있다

 

  한때 우리들의 자부심이었던 촛불에 대해서도 시인은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촛불이 밝은 빛을 토해내야 하건만 촛불이 갇혔다고 한탄합니다.

 

아날로그 양초촛불이 디지털 LED촛불로 바뀌었다.

아날로그 촛불은 자기 온몸을 다 태우고 녹지만

디지털 촛불은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없다.

노동자에서 소시민적인 인텔리로 동력이 바뀐 신호였다.

땅을 갈아엎어 토양을 바꾸지는 못하고

기껏 나무를 골라 옮겨 심을 뿐인데도 연일 축제이다

그래서 촛불도 계속 광화문 광장에 갇혀 있었고

세월호의 노란 리본도 광화문 광장에 갇혀 있었다.

 

  촛불이 디지털로 바뀐 세상에 시인은 답답합니다. 한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십시일반 나눠 샀던 촛불을 생각해 보니 시인의 답답함이 이해도 될 듯합니다. 저는 디지털 촛불을 손에 들어보진 못했지만 소식을 보고 들으며 그저 편해서 그러 거니 생각했는데 민감한 시인은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없어 그저 꿈틀대며 흉내를 내는 촛불을 피부에 대어 봤습니다. 강렬한 소망을 가졌던 노동자는 기름을 짜 초를 만들었지만 소시민 인텔리는 숫자를 조합하고 흉내 내어 초를 만들었습니다. 시인은 땅을 갈아엎고 토양을 바꾼 후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외쳤지만 땅은 그냥 둔 채 기껏 옮겨 심는 나무로 만족하는 사람들에 실망을 합니다. “그 도저한 비장미에 우리는 실성할 것처럼 얼마나 압도되었던가” (멀리 있는 빛 중에서) 과거 그가 살았던 삶과 비교하면서 아쉬워합니다. 그의 현실인식이 이어집니다.

 

촛불의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했다.

30년 전 박종철, 이한열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부르주아 민주주의 꽃은 피자마자 졌다.

30년 후 세월호 아이들과 백남기의 시체를

거름으로 피운 불꽃도 피자마자 졌다.

6월항쟁에 벽돌 한 장씩을 얹었던 청춘들은

노동 없는 디지털 촛불에 눈이 멀어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이제 광화문 광장은 텅 비었다.

독재의 무기는 칼이고 자본의 무기는 돈이다.

칼은 몸을 베고 돈을 정신을 벤다.

우리는 몸도 베였고 정신도 베였다.

우리는 아직 이것밖에 안 된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