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겨울방학. 최진영 소설. 민음사 간행 1

무주이장 2023. 12. 30. 05:11

섬세함이 만든 불편 이겨내려면...

 

  소설가나 시인의 마음은 섬세합니다. 사물이나 사건을 대할 때 그들은 함부로 재단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마음이 미묘한 변화를 보이면 이를 섬세하게 알아챕니다. 그러니 마음이 항상 편하지 않겠지요. 불편하면 사람은 편한 방법을 찾습니다. 개선이라고도 하고 개혁이라고도 합니다. 이기적인 편함은 그들을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세상은 쉽게 개선되거나 개혁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힘이 모여야 변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도 제대로 어쩌지 못하는데 타인의 마음까지 어떻게 쉽게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소설가나 시인은 항상 불편할 것입니다. 그 불편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나의 아저씨’ 이선균 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버렸습니다.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사람 또한 섬세한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행동이 발목을 잡아 자신의 결백을 스스로 결박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난 결백하다’ 큰소리를 쳐야 합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를 모함했던 자들에 눈을 돌립니다. 세상을 사는 데에는 섬세함이 불편할뿐더러 스스로를 죽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온통 섬세함을 버려야 한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경찰이 그렇고 검사가 그렇고 기레기들이 그럽니다. 그들의 의도된 말에 부화뇌동하여 함부로 남을 재단하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그들이 괴롭히며 죽인 사람을 죽은 후에도 근거 없이 씹어댑니다. 이들을 응징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건만 쉽지 않습니다. 문학이 가진 약점은 섬세함에 기초하였다는 거짓 결론에 이른 적이 있었습니다. 소설을 멀리하고 시를 멀리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니면 우리가 시체로 변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다시 소설과 시를 읽게 된 이유입니다. 이번 소설은 최진영의 소설입니다. 작가의 섬세함이 모든 작품 속에서 읽혔습니다. 섭섭함, 따뜻함, 안타까움 등의 섬세한 감정들이 읽는 내내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아직 시체가 되지 않은 부분이 제 몸 어딘가에서 존재한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런 불편함을 느끼면 좋겠지만 세상이 허용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섬세한 마음이 만든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섬세한 마음들이 모여야 합니다. 유족의 단식 앞에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 대는 야만에 대하여 주먹 감자를 먹이고 날아오는 주먹을 주먹으로 쳐내야 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섬세한 사람이 매일 떡실신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힘은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당신’의 섬세함에 기대어 골목에 숨어 지켜보기만 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김태형 소장은 설명합니다. 그의 설명이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뒤틀렸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최영미 시인은 싸웠습니다. 최진영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믿습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