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희망. 양귀자 장편소설. 쓰다 간행 3

무주이장 2023. 12. 4. 16:18

그때 말은 안 했지만 우리 희망이 있었지?

 

 지금 젊은이들은 소설 ‘희망’ 속의 주인공들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이산가족이 되어 북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힘들게 사는 딸에게 신세를 지며 살다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 신철호라는 노인의 이야기가 쉽게 공감가지 않을 것입니다. 딸의 교통사고 보상금을 사기를 당해 잃고, 손자는 정신이 박약하고, 노인은 끝내 현실에 정착하지 못한 채 고향으로 가겠다며 손자를 두고 나성여관을 떠나는 이야기는 통속적입니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 드라마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던 것도 같습니다.

 

 공부 잘하고 똑똑했던 형은 운동권에 투신하여 늘 경찰에 쫓기고, 자신과 조직을 보호하려던 선배는 고문으로 인하여 심신이 피폐해져 폐인이 된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예쁜 누나가 화려한 생활을 탐닉하다 고작 정부가 되고, 마지막에는 거리의 여자가 되는 이야기도 또한 그렇습니다. 그런 형과 누나를 그리워하는 우연이의 이야기도 역시 그렇습니다.

 

 언제나 불운을 걱정하며 손에 쥔 행복을 관리하지 못해 파국을 맞은 찌르레기 강 씨 아저씨의 이야기도 그때 그 시절에는 익숙한 캐릭터 같기도 합니다. 뽕짝 아줌마의 현실감에서 저런 생활력을 배워야겠다 결심했다고 하면 웃겠지요.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가 그저 통속적이어서 재미가 떨어졌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저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던 이야기는 산문시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모두 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상국 시인과 안도현 시인이 쓴 산문 같은 시도 기억이 났습니다. 현실을 비관하면서도 시를 짓고 죽음을 보면서도 삶을 생각하는 것은 반드시 시인이라야만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양귀자의 이 소설은 김훈 선생의 칭찬처럼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변용을 하지만 시적인 무엇이 있습니다. 원제목이었다는 ‘잘 가라 밤이야보다는 희망이라는 제목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목 잘 바꾸었습니다.

 

 양귀자 선생이 희망’ 3판을 내면서 쓴 작가의 말을 소개합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희망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마음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 이렇게도 줄곧 애가 쓰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이 책이 절판되어 사람들에게 잊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그러므로 내겐 형벌이었다.”

희망을 읽은 독자로서 희망을 느꼈다는 말로 작품에 대한 감사를 표합니다.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