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화목사회로 가려면 어떻게 해요?
저자의 인식은 자본주의의 역사를 통찰하면서 확장되었습니다. 21세기는 세계가 부정의하다고 주장합니다. 인류가 굶는 경우는 식량생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평등하고 부정의가 판을 치고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자본주의는 결코 스스로 약자에게 자원을 배분하는 체제가 아니라고 확신을 합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고 역설합니다. 자본주의가 수정을 시작한 것은 전 세계 사회주의화를 우려한 독점자본가들이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면서 사회주의적 내용을 대폭 받아들인 때부터입니다. 1940년대~1970년대의 영국이나 북유럽 나라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때 평등 수준이 높아집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독점자본가들과 민중의 힘 관계는 결정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우선 독점 자본가들에게 가장 강력한 외부 위협 세력이자 경쟁 세력인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하고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된 미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1990년대부터 한국사회를 강타합니다. 우리가 세계화를 외친 배경입니다. 자본주의는 다시 고삐가 풀립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빈부격차는 2008년에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불러왔고, 그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역사는 부의 분배가 하늘의 뜻이 아니라 힘 관계를 비롯한 여러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자는 자본주의 제도를 더 나은 사회제도로 교체해야 한다며 이상사회란 풍요-화목사회라고 주장합니다. 이제 그의 생각이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인류는 이미 풍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제를 이미 달성했다고 그는 적었습니다. 나라들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을 비롯한 경제적 부국들은 더 이상의 경제 성장 없이도 국민의 의식주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력이 발전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현실을 진단합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여러 사회문제를 유발하는 진정한 근원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땜질식 처방에만 매달려왔다며 이제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쪽으로 가자고 제안합니다. 먼저 한국 사회의 숱한 문제들은 심각한 불안에서 나오니까 불안 수준을 크게 낮추거나 해소하자고 합니다. 생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생존을 국가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로 전환하자고 합니다. 존중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평등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자고 합니다. 그는 기본소득제를 제안합니다.
또 한국인들은 국민을 탄압한 대통령을 여러 번 권좌에서 끌어내린 소중한 경험은 있지만,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주인이 될 권리는 허용되지 않고 있다며 저자는 조직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합니다. 그 예로 독일이나 북유럽나라들은 노동자에게 경영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예시하며 그런 기업들의 성적이 매우 훌륭하다고 논증합니다. 조직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국민들의 저항의식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도 기본소득제는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사회가 가난-화목사회에서 풍요-화목사회가 아닌 풍요-불화사회로 추락한 것은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으로 사회발전이 뒤틀리고 지체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면서 평화 체제로의 전환을 제시합니다.
이제 저자의 책이 정리가 되는 듯합니다. 신자본주의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사회에 마구 칼질을 해 사람들을 다층적 위계로 썰어놓고는 다시 동일한 위계의 사람들조차 채로 쳐 사방으로 흩어놓았습니다. 이런 사회는 사람들의 욕망을 거세합니다. 거세당한 욕망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마구 튀어 오릅니다.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공격적이 되고 정신질환에 시달립니다. 가정은 파괴됩니다. 이런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못한 사회라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지금 우리는 충분히 풍요하다고 확신하면서 이 풍요로움을 이용해서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제도를 바꾸는 것이고 구체적으로는 사회주의입니다. 공산주의가 아닙니다(늘 오해를 하죠. 수정자본주의는 자본주의에 사회주의를 가미한 제도를 말합니다. 그 사회주의입니다).
소련이 붕괴될 때 우리 사회의 진보 지식인들이 왜 그토록 실망했는지에 대한 맥락을 조금은 이해하였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사회주의라는 이념 싸움에 몰입해서가 아니라 포악한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고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는 수단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실망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긴 정리를 한 이유는 바둑이라면 복기이고, 시험이라면 요약정리라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평이 아닌 이유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은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다음 손에 든 책 역시 김태형 소장님의 것들일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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