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에세이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장편소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무주이장 2023. 11. 11. 18:42

  ‘세상은 어째서 이따위인가’라는 질문만을 단검처럼 손에 쥐고 달려갈 수 있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이따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방패처럼 손에 쥐고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오래 멈추었다가 다시 한 걸음 나아가거나 물러서는 시절을 통과하고 있다’ 개정판 작가의 말 중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젊은 시절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세상은 어째서 이따위인가?’라고 질문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세상은 항상 상식을 말하지만, 상식이 살아있지 못하니 상식을 강조한다는 것은 몰랐습니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 찼습니다. 부딪히고 갇히면서 마음속에 단검을 쥐고 누구든 나에게 달려드는 사람에게는 최선의 방어인 공격을 하고 싶었습니다. 칼을 쥐면 당장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좌절하고 울면서 스스로는 부조리에 조금씩 적응하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차츰 ‘이따위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단검을 버리고 방패를 쥡니다.

 

  인지부조화는 심각한 신체변화를 야기합니다. 부조리를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누구든 선뜻 선택하는 것이라고, 성공한 저 사람도 그렇게 산다고, 그에게서 배울 것은 바로 저것이라고 굳게 믿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습관을 들이지만 몸이 자꾸 아픕니다. 그렇다고 배운 도둑질은 좀도둑질 밖에 없으니 아픈 몸을 추슬러 다른 세상을 살겠다는 결심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습니다. 몸에 하나씩 병이 찾아듭니다. 젊음이라는 밑천을 믿었지만, 몸은 젊음의 최소기간만 허락했습니다.

 

  이제 질문이 달라져야 합니다. 몸이 울부짖습니다. “이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이제 세상을 조금 알았으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도 같으니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인지부조화의 사슬을 풀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볼 수 있을 듯합니다. 바꾼 삶이 나를 속이더라도 그렇게 살아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벌써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짧습니다. 하지만 운이 나쁜 편이 아닙니다. 시작을 했으니까요.

 

  우리 옆을 스쳐간 그 아이는 ‘세상은 어째서 이따위인가’를 매번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질문을 하고 스스로 답을 찾는 아이는 버거워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경험을 통해 궁리하고 연습하지만 불행히도 시간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단검을 들고 이따위 세상을 만든 사람에게 달려듭니다. 요령도 없고, 힘도 없는 아이는 ‘이렇게 살 것이다’는 결심과 함께 그 결심을 행동하는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진짜 엄마를 찾는 여정은 허무하게 끝이 났고, 우리 옆을 스쳐간 그 아이를 그렇게 보낸 나도 마음이 아픕니다.

 

  진짜 엄마, 진짜 아빠, 진짜 이웃, 진짜 선생을 찾아다니는 아이들은 마음먹고 둘러보면 여기저기 있을 법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쉽게 찾지 못했습니다. ‘못된 소설가’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언젠가 우리 옆을 스쳐갈 그 아이를 또 몰랐을 것입니다. 이 소설가, 정말 ‘못된’ 사람인지는 판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이끌려 모진 세상 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여전히 우리를 속일지라도 사는 방법은 우리가 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랑 그것 찾아봐야지요.

예스24에서 가져온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