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시집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시인의 정제된 언어를 좋아합니다. 이 책은 어떤 정보나 무슨 단서가 있어서 고른 책이 아닙니다. 2023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중 하나가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과 제목이 같은 시집이라서 집어 든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 잘 골랐습니다. 시인의 언어를 조금은 알아들은 듯합니다.
책을 열면 네이버의 지식백과를 변용하였다며 책을 소개합니다. 저자 이소호에 대해 설명하고 시를 우화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야만적이고 거칠며 잔인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처절한 일상 속에서 버텨낸 단단한 고난을 다루고 있다’는 우화를 설명한 말보다 그 아래 단발머리 소녀(아가씨? 아주머니? 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부르기로 합니다)가 손에 든 종이(지도?)와 오른쪽 발 옆 나침반, 왼쪽 발 옆에 손의 자유를 위해 놓은 배낭이 더 눈이 갔습니다. 어떤 우화를 어디에 묻어두었는지 찾는 여정을 준비하는 걸까요? 표정에 눈이 더 갑니다. 망설임이 보입니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 심플라이프, 심플리빙 모두 비슷한 단어입니다. 욕망에 눈이 멀어 매일 소비하고 구석구석 모아두었다가 한번 쓰고 일 년에 한 번 버리는 삶의 다름 아닌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집, 퍽, 픽, 꽥으로 미니멀하게 표현한 시 뒤에 나오는 그림은 집 꼴이 말이 아닌 집입니다. 분주합니다. 손과 발이 구멍마다 나와 욕망합니다. 욕망을 뒤집어쓴 집을 소녀는 조금 떨어져 지켜보기만 합니다. 누구 집이길래…
욕망의 집을 나와 하룻밤 신세라도 질 양인지, 앉은 곳이 새집입니다. 생김도 욕망도 다른 새와 마주 보며 무표정한 소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요? 애초 기대할 수 없는 저곳에는 왜 갔을까요? 어쨌든 저 높고 가파른 곳에 있는 새 둥지엔 어떻게 갔대요?
욕망의 집, 말도 통하지 않는 새 둥지에 가더만… 이번에는 관입니다. 누가 불렀을까요?
차라리 관은 어떨까? 스스로 관에 들어간 것은 아닌 듯합니다. 관에 선 아이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이 잡고 있으니까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소녀. 어린아이를 관에 붙잡아 둔 사람은 누굴까요? 이야기가 자꾸 무서워지려고 합니다. 소녀도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멍한 표정은 무슨 생각에 빠진 걸까? 머리 위, 이고 있는 것은 집일까? 공장일까? 그곳에서 나오는 연기는 매연에 가깝고, 하늘에 있는 구름도 지저분해 보입니다. 저런 하늘아래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마지막 그림입니다. 소파에 앉은 소녀가 등을 밝혀 다시 지도를 봅니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은 게 바다 같기도 합니다. 파도의 부침에도 꼭 다문 입과 지도에 집중한 의지의 눈빛이 소파의 균형을 잡은 듯합니다. 이제 여행은 다시 시작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를 것 같기도 합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의문: 작가의 다른 시집을 보면 이 그림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늘 그렇듯 저에게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책을 펴는 것은 혹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시가 있었으면 하는 기대 때문입니다. 재미라고 말하고 보니 무슨 재미? 그게 뭔 데? 하는 질문이 나오는 것 같아 금방 입을 다물고 싶습니다. 시인의 언어가 어떻게 전달되든 일단 느낌이 전달되는 것에 기뻤습니다. 언어를 다듬는 세공의 시간을 같이 느끼면 더욱 좋겠지만 바람일 뿐입니다.
결심: 이소호 시인의 시집을 도서관에서 찾는 대로 읽도록 하겠습니다(자주 보면 아는 것이 많아져 더욱 정이 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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