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인문학의 중요 교재입니다
강유정 교수가 쓴 시네마토피아는 영화에 관한 전문적인 정보를 주는 책이 아닙니다. 영화의 제작과정이나 배우, 시나리오 작성법, 조명이나 카메라 등의 스텝진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닙니다. 이런 책들을 전문서적으로 분류한다지요.?
시네마는 영화를 뜻하고 토피아는 유토피아를 말합니다. 시네마와 유토피아를 조합해서 만든 말이 시네마토피아입니다.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익히 아는 단어입니다. 강유정 교수는 “유토피아, 하면 아름다운 낙원이 떠오르지만 사실 ‘어디에도 없는 땅’을 의미한다. 세상에 없는 낙원, 그게 바로 유토피아다.”라고 설명합니다. (432쪽) 세상에 없는 낙원임에도 그 없는 낙원이 지옥 같은 삶을 견디게 할 때가 있다며 영화와 땅, 시네마토피아가 그렇다고 또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강 교수는 자신의 바람을 말합니다. 시네마토피아는 영화에서 유토피아를 보고 지옥 같은 삶을 견디면 좋겠다는 말일까요?
책을 끝마치며 적은 강 교수의 바람을 처음부터 읽고 책을 읽었다면 이 책의 주된 내용은 ‘바람’을 기록하는 것이니, 아마도 지옥 같은 현실을 이야기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연대를 얘기하기도 하겠지만, 현실 비평을 더 많이 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을 했을 것입니다. 영화 속을 여행하며 현실을 비평하려면 눈도 밝아야 하고, 생각도 깊어야 할 것입니다. 강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평소 자주 영화를 많이 봤던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화면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공감도 많이 했습니다.
영화란 것이 장르가 무엇이든 현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입니다. 판타지를 그린 영화라고 하더라도 그 판타지 속에는 사람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판타지 속에는 사람의 갈망과 욕망이 기반되어 있습니다. 결국 영화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강 교수는 인문학을 “삶의 흔적에 대한 공부일 테다”라고 정의를 합니다. “두고두고 다시 읽고, 보고, 써도 닳지 않는 삶의 어떤 정수가 들어 있는 것, 그게 인문학이다”라고 강조합니다. (278쪽) 영화가 그렇다는 주장입니다. 저는 동의합니다.
인문학에서 사람을 이야기하면 ‘같은 종끼리 갖게 되는 고통의 교감’ (281쪽)을 얘기하게 되고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연민은 이어서 ‘인간의 기준’에 관한 이야기로 확장이 됩니다. “민중은 개, 돼지로 취급하면 된다.”라는 말을 한 교육부 관료 나향욱이 왜 정책기획관 자격이 없는지 국한된 질문이 아니라, 왜 인간의 기준에 미달한 최소인간 실격자인지 (39~40쪽) 영화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영화가 인문학의 중요한 교재인 이유입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현실을 비판하고, 지옥 같은 현실의 본질을 꿰뚫어 보며, 현실에는 없는 땅인 유토피아를 기대하고 희망하면서 어떻게 현실을 견딜 수 있었는지 강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른 인문학 교재가 없지는 않겠지만, 영화를 어설피 보고 평가 절하하는 분이 있다면 생각을 다시 하여야 할 듯합니다.
오늘도 저는 책을 읽다가 지치면 네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채널에서 영화를 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벽안(BLUE EYE SAMURAI)‘이란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봤습니다. 일본인의 모습은 외국인이 보는 전형적인 동양인으로 그려졌습니다. 쭉 째지고 조그만 눈, 낮은 코, 작은 입 등 외국인이 선호하는 동양인의 얼굴이라고 한때 주장했던 얼굴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영어로 대사를 칩니다. “복수는 금이다. 절대 녹이 슬지 않는다”는 대사가 8편을 보는 동안 기억에 남은 대사였습니다. 복수를 꿈꾸는 마음이 제 가슴속에도 어딘가 숨어있었던 모양입니다. 현실에서는 좀체 있을 수 없는 복수가 저의 유토피아였던 모양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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